中 ‘자치 경영’ 국유기업에 ‘독립왕국’ 철퇴…개방 구호에 역행

입력 2019-10-24 15:01

대외 개방과 기업의 자율성 확대를 강조하고 있는 중국이 자국 국유기업에 대한 공산당 지배를 강조하고 사상 통제를 강화하는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 국유기업은 민주적인 관리와 직원 자치를 내세웠다가 문화대혁명 때 거론됐던 ‘독립왕국’이란 굴레가 씌워졌다. 중국 정부는 기자들에게 ‘시신핑 사상’ 시험을 치르도록 의무화하는 등 사상검증도 강화하는 분위기다.

24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국가감찰위원회가 관리하는 중국기검감찰보는 23일 ‘독립왕국의 전멸’이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한 국유기업 산하 공장의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베이징 소재 국유기업 산하 인쇄 관련 공장은 상급조직의 지휘를 벗어나 2009~2017년 ‘전면적인 자치’를 하면서 조직 기강이 흐트러지는 등의 문제가 불거져 올해 초 13명의 간부가 문책받았다.

감찰보는 “이 공장은 상부 조직의 결정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개혁을 추진하고 자치를 실행해 8년동안 당의 지도와 감독을 벗어나 있었다”며 “이 공장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고 물 샐 틈 없는 독립왕국과 같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를 “정치·조직 기율을 위반한 전형적 사건”으로 지목했다.

‘독립왕국’은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것은 중앙에 독립왕국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이라며 문화대혁명의 원인으로 거론한 표현이라고 명보는 설명했다.

감찰보는 별도의 논평에서 “국유기업 발전·개혁 과정에서, 당이 국유기업에 대해 일관되게 지도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이는 중대한 정치 원칙으로 언제나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기자들은 앞으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도이념인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이해도를 측정하는 시험을 봐야한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28일부터 국내 주요 신문과 TV에서 편집업무에 관여하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이 시험을 실시키로 했으며 시험에 불합격하면 5년마다 갱신하는 기자증을 발급받지 못해 취재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2014년부터 기자윤리 등을 묻는 시험이 의무화됐지만 이번 시험부터 ‘시진핑 사상’ 시험이 추가된 것이다. 시험은 중국 공산당이 개발한 시진핑 사상 교육용 앱인 ‘쉐시창궈’(學習强國·학습강국) 등을 이용해 실시하며 100문항 가운데 8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한다.

쉐시창궈에 나오는 연습문제들은 시 주석의 발언이나 당의 사상으로 어떤게 맞는지 고르는 식으로 돼 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특징과 우수한 점은 ‘중국 공산당의 지도’가 정답인 식이다.

이처럼 내부적으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중국이 대외적으로 외치는 개방과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23일 중국 경제의 생산력 향상과 고품질 발전 도모로 기업 환경을 최적화하는 내용의 규정을 내년 1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중국 정부는 모든 시장 주체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법에 따라 정책 지원을 해주며 기업의 경영 자율성과 재산권 및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기업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행정 승인을 간소화해 중국 경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조치로 해석됐다.

시 주석은 지난 19일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1회 다국적기업 회담에 축하 서한을 보내 “중국 대외 개방의 문은 더 크게 열릴 것이고, 다국적기업이 중국에서 기회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