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버너 넣어도 불 안 붙네”…삼성 ESS, 5분 안에 불 자체 진화했다

입력 2019-10-24 11:04 수정 2019-10-24 11:30
삼성SDI의 중대형 시스템 개발 팀장인 허은기 전무(오른쪽)가 ESS용 특수 소화시스템이 적용된 모듈케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삼성SDI 제공

지난 23일 오후 3시 울산 삼성SDI 공장의 안전평가동 방폭룸에서 ‘펑’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삼성SDI는 이날 자사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적용되는 ‘특수 소화 시스템’을 소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배터리에 불을 붙이는 시연회를 했다. 최근 ESS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업계 전반의 제품 신뢰도가 떨어지자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이날 시연회에선 소화시스템이 있는 모듈과 아닌 모듈을 비교 시연했다. 특수 소화 시스템이 장착된 배터리 내부의 특정 타깃 셀에 못을 초당 8mm씩 4~5번 움직이자 두꺼운 방폭룸 문밖으로 들릴 정도로 큰 폭발음이 났다. 이어 자욱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21도에 머물던 타깃셀의 온도는 순식간에 60도가 됐고 300도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이 셀의 좌우에 인접한 셀들은 처음과 비슷한 21.5도를 그대로 유지하다가 타깃 셀의 온도가 120도를 넘었을 때 2~3도씩 증가했다.

인접 셀의 최종 온도는 40도까지 올라갔으나 그 이상을 넘지 않았다. 자욱한 연기가 배터리를 뒤덮고 매캐한 냄새가 방폭룸 벽 너머로 났지만 불꽃 하나 튀지 않았다. 시뻘건 불길도 없었다. 화재는 3분가량 지나자 자체 진화됐다. 타깃 셀의 온도가 300도에 머물렀을 때였다. 10여분 뒤에는 연기도 가라앉았다.

반면 특수 소화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은 모듈에 타깃 셀을 못으로 자극해봤다. 똑같이 ‘펑’하는 폭발음이 났고, 이번에는 빨간 불꽃이 연이어 튀었다. 곧이어 거센 불꽃이 몰아치는 소리가 났고, 불길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졌다. 순식간에 타깃 셀 온도는 140도를 넘었다. 좌우셀의 온도는 그보단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타깃 셀의 온도가 약 270도가 됐을 때 좌측 셀은 126도, 우측 셀은 200도가량 온도가 치솟았다. 이 배터리는 자체 소화가 불가능해 인위적으로 불을 껐다.

삼성의 특수 소화 시스템은 특수 첨단 소화 약재를 넣은 부품과 셀과 셀 사이에 운모(마이카)를 사용한 복합단열재를 넣는 것이다. 캡슐형 첨단 소화 약재는 불을 감지하면 터지면서 약품 가루가 분사돼 불을 끈다. 복합단열재는 화재가 발생한 셀에서 달궈진 열이 다른 셀로 번지는 것을 막는다.

실제로 첨단 소화 약재 부품을 2개 장착한 모듈케이스에 불을 켠 가스 버너를 넣어봤다. 타닥타닥 하며 타들어가는 소리가 5초가량 나면서 뚜껑이 부풀었지만 이내 불이 꺼진 뒤 나는 하얀 연기가 새나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캡슐 약품이 터지면서 쏟아져 나온 노란 가루들이 떨어져 있었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은 “우리는 배터리를 제조하는 업체고 ESS 셀을 판매하는 업체여서 구매에 문제가 없이 산업생태계 일으켜서 세계적인 산업 생태계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 희망이었고 꿈이었다”며 “작년부터 국내에서 화재 사건이 났던 것이 있어서 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어 “국내생태계가 복원되기를, 세계를 다시 한번 리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삼성SDI 관계자는 “2017년 이후 발생한 ESS 화재 27건 중 삼성SDI의 배터리는 9건이었고, 배터리 결함으로 밝혀진 적은 없다”면서 “알 수 없는 요인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원천 소화가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한 것”

삼성SDI는 이달 말부터 전국 1000여개 ESS 사이트를 대상으로 특수 소화 시스템 적용을 순차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울산=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