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가 20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최대 거점 지역인 라스 알 아인에서 철수했다. 미국의 중재 하에 터키와 쿠르드족이 맺은 일시 휴전 합의에 따른 첫 후속 조치다. 양측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한층 낮아진 셈이지만 여전히 동맹을 외면하고 터키의 편의만 봐줬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 지역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뜻대로 미군은 보란듯이 추가 철수했다.
AFP통신, 로이터통신 등은 YPG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 소속 전투원들과 부상자들이 라스 알 아인을 떠났다고 전했다. 터키 국방부 관계자는 “86대의 차량 행렬이 라스 알 아인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고, 키노 가브리엘 SDF 대변인도 “미국이 중재한 터키와의 군사작전 중단 합의의 일부로 모든 SDF 전사들을 철수시켰다. 라스 알 아인에 더이상 우리 전사는 없다”고 밝혔다. 친터키 성향 시리아 반군의 잔학 행위를 우려한 일부 민간인들도 철수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는 지난 17일 미국의 중재 하에 5일간의 조건부 휴전에 합의했다. 터키가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족을 겨냥한 군사작전을 120시간 동안 중단하되 쿠르드 병사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안전지대 밖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터키는 현재 시리아 북동부 국경을 따라 폭 30㎞ 안전지대를 설치하고 자국 내 시리아 난민 360만여명 중 일부를 이곳으로 이주시킨다는 방침이다.
쿠르드족의 철수로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여전히 안전지대의 범위를 놓고 양측의 말이 엇갈리고 있어 군사적 충돌이 재현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터키는 안전지대의 총 길이를 440㎞라고 주장하는 반면, 쿠르드족은 국경 도시인 라스 알 아인과 탈 아브야드 사이 120㎞에서만 철수하기로 합의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양측의 소규모 교전도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쟁 위험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지만 미국은 서둘러 이 지역에서 발을 빼고 있다. 이날 시리아·이라크 접경지대인 하사카와 탈 타미르에서는 미군 500여명을 태운 장갑차 70여대가 철수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전날 시리아 북부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의 상당수는 이라크 서부로 이동한다고 밝혔다. 총 1000여명의 미군 병력 중 700명은 이라크 서부에, 200~300명은 시리아 남부로 재배치될 예정이다. 마즐룸 코바니 압디 SDF 사령관은 뉴욕타임스와의 통화에서 “이제 (미군 철수 지역에서) 쿠르드족에 대한 인종청소가 일어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그에 대한 책임이 주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