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 샤오미·동인당까지 무차별 방화…반중감정 격화

입력 2019-10-21 16:06
홍콩 시내의 샤오미 매장 앞에 시위대가 지른 불길이 치솟고 있다.AP연합뉴스

홍콩 시위대가 중국은행과 샤오미, 동인당 등 중국계 상점과 점포에 무차별로 불을 지르고 공격하는 등 홍콩내 반중 정서가 극에 달하고 있다.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은 복면금지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독립조사위원회’ 설치를 거론하며 한발 물러섰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본토의 무력 개입도 쉽지 않고,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워 홍콩의 혼란이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2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전날 벌어진 홍콩 시위에서 침사추이와 조던, 야우마테이 일대의 중국계 은행과 점포, 식당 등이 시위대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 최근 잇따라 홍콩 시내에서 벌어지는 ‘백색테러’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고 믿는 시위대가 보이는 대로 중국계 점포에 보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침사추이에 있는 중국은행 점포에는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졌고, 삼수이포 지역에 있는 중국초상은행 점포에도 불을 질렀다. 시내 곳곳에 있는 중국계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파손되고 스프레이 낚서로 훼손됐다. 중국은행 지점 밖에는 ‘이 은행이 중국 공산당에 자금을 대기 때문에 파괴한다’는 설명도 보였다.

시위대는 중국 본토인 소유의 기업으로 알려진 ‘베스트마트 360’, 유니소(Uniso) 등의 점포도 습격해 기물을 파손하고 검은색 스프레이로 “중국 공산당은 하늘이 무너뜨릴 것이다” “광복홍콩” 등의 구호를 남겼다.
홍콩 시위대가 시진핑 주석과 캐리 람 행정장관 등의 사진을 붙여놓고 ‘X’ 표시를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시위대는 몽콕 지역에 있는 중국 휴대전화 기업 ‘샤오미’ 점포와 전통 중의약 업체 ‘동인당’(同仁堂) 점포 등에도 불을 질렀다. 길가의 벽에 시진핑 주석과 캐리 람 행정장관 등의 사진을 붙여놓고 ‘X’ 표시를 하기도 했다.

경찰은 시위가 격렬해지자 최루탄과 고무탄 등을 쏘고 물대포에 파란색 염료와 최루액을 섞어 시위대와 현장 취재기자 등에 무차별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카오룽 지역의 한 이슬람사원(모스크)에도 물대포를 쏘는 바람에 모스크 대문과 흰색 계단 일부가 푸른색으로 물들어 비난이 쏟아졌다.

홍콩 정부는 성명을 내고 “복면을 한 ‘폭도’들이 경찰서, 공기관 건물, 지하철역, 은행, 점포 등을 무차별 공격하고 방화를 저질렀다”면서 “이들의 무법천지 행보는 사회질서를 엄중하게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경찰의 강경진압 조사를 위한 독립조사위원회 설치 등 시위대의 일부 요구 수용 가능성을 제시하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20일 방송 인터뷰에서 경찰민원처리위원회(IPCC)의 조사가 7월 21일 위안랑 백색테러, 8월 31일 프린스에드워드역 시위 진압, 산욱링 구치소의 실태 조사 등에 집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번 사건들의 진실을 알기를 바라지만, 만약 IPCC 보고서가 논쟁을 종식할 수 없다면 독립 조사위원회를 포함해 사회가 수용가능한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독립 조사위원회 설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처음이다.

캐리 람 장관은 “수감자의 건강 문제로 인한 형 감면 등 홍콩 기본법은 행정장관의 사면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며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 문제도 거론했다.

이에 대해 홍콩 야당은 구의원 선거 참패를 두려워하는 친중파 진영을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공산당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제19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 전회)를 앞두고 홍콩 사태가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아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홍콩 사태가 계속 악화되지만 미국 하원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을 통과시키며 적극 개입하고 있어 ‘무력개입’ 등 중국식 수단을 사용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 특성상 독립과 자유를 주장하는 홍콩 시위대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줄 수도 없는 처지다. 4중 전회에서 홍콩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되겠지만 해법 도출은 쉽지 않아 보인다.

베이징 소식통은 “홍콩은 시위대와 정부간 불신이 너무 깊어져 대화가 어렵고, 중국 본토의 무력개입도 쉽지 않다”며 “홍콩은 해결책 없이 이대로 방치되면서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 당분간 계속 지속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