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배신자’, 러시아는 ‘믿을만한 동맹’…중동 기류 변화

입력 2019-10-16 09:51 수정 2019-10-16 10:12
시리아에서 미국이 ‘배신자’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유일한 ‘믿을만한 동맹국’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CNN방송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동에서 승자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터키군의 탱크와 병사들이 터키와 국경지대에 있는 시리아 북부의 요충지 만비즈 인근에 주둔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군은 시리아 북동부에서 1000여명의 병력을 철수시켰다. 이 공백을 러시아가 메웠다. 러시아는 터키군과 쿠르드족·시리아군의 경계선을 순찰하면서 양측의 충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감한 시점에 푸틴 대통령이 14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데 이어 15일 아랍에미리트를 찾은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푸틴 대통령이 이들 국가를 찾은 것은 2007년 이후 12년 만이다.

사우디 고위 관료는 CNN에 “사우디에게 하나의 전략적 파트너(미국)가 있던 시절은 지났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동 국가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그 빈자리를 치고 들어가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살만 사우디 국왕과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AP뉴시스

시리아에서 가장 긴장이 고조되는 지역은 터키와 국경 지대에 있는 북부 만비즈다. 유프라테스강에서 서쪽으로 30㎞ 가량 떨어진 만비즈는 쿠르드민병대(YPG)가 2016년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몰아내고 장악한 요충지다.

터키군과 쿠르드족·시리아군은 병력을 만비즈에 집중시키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시리아 정부군이 만비즈와 그 주변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밝혔다. 시리아군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터키군이 만비즈를 차지하기 위해 총공세에 나설 경우 불바다가 나설 가능성이 크다. 시리아 주둔 미군은 안전을 장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만비즈를 떠났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만지즈 일대를 순찰하면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주력했다. 러시아의 알렉산더 라브렌티예프 시리아 특별대사는 “터키와 시리아군의 충돌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는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미군이 했던 일을 러시아군이 대신 하는 것이다. CNN은 러시아군은 터키군의 공격으로부터 쿠르드족을 보호할 용의가 있고, 실제로 보호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군대라고 전했다.

‘어제의 적’이었던 시리아군의 참전으로 쿠르드족은 힘을 얻었다. 쿠르드족의 시리아민주군은 반격을 개시해 터키군에 빼앗겼던 라스 알 아인을 탈환했다.

푸틴 대통령이 14일 사우디에서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것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러시아는 사우디의 앙숙인 이란과 가깝다. 또 사우디는 러시아와 긴장 관계에 있는 미국의 동맹국이다. 얽히고설킨 관계의 두 정상이 손을 잡은 것이다.

CNN은 밀월 관계로 발전하는 러시아와 사우디 정상의 대화가 석유 문제에 국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푸틴에 대한 환대는 사우디가 미국에 보내는 경고 사인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는 여전히 미국에게 중동의 버팀목이다. 미국과 사우디는 지난 11일 미군 2800명의 사우디 추가 주둔에 합의했다. 이렇게 되면 사우디 주둔 미군은 모두 3000명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배후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목되면서 미 의회에서는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미국 내 비판이 껄끄러운 사우디 입장에서는 좀 더 믿을만하고 덜 도덕적인 친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CNN은 분석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