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왜 구속 위기에 처했나

입력 2019-10-16 05:55 수정 2019-10-16 05:55
무함마드 유누스. 연합뉴스

2019 노벨상이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발표되는 동안 과거 노벨상 수상자와 관련한 흥미로운 뉴스가 해외 언론에 보도됐다. 지난 8일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이 자국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이자 빈곤퇴치 운동가인 유누스는 2006년 자신이 설립한 빈민구제은행 그라민 은행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AP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유누스가 구속 위기에 처한 것은 지난 7월 3건의 불법해고와 관련한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누스 박사가 운영하는 그라민 커뮤니케이션에서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회사의 방해로 실패한 뒤 해고됐다는 것이다. 그라민 커뮤니케이션은 유누스 박사가 운영하는 비영리 IT 솔루션 회사다.

다카 타임즈는 14일(현지시간) 유누스의 변호인이 이날 “의뢰인인 유누스 박사가 업무 때문에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재판에 출석할 수 없었다”고 탄원했지만 고등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유누스에 대한 재판부의 압박이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의 입김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시나 총리는 2011년 유누스를 그라민 은행에서 쫓아내는 등 오랫동안 갈등을 빚고 있다. 방글라데시 국민들에게 국부로 추앙받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초대 총리의 딸인 하시나 총리는 군부 독재 시절 야당 지도자로 투옥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화와 함께 선거에서 이기며 1996~2001년에 이어 2009년부터 지금까지 총리를 역임하고 있다.

그라민 은행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해외에 빈민구제의 성공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지만 방글라데시 안에서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경제학 교수였던 유누스는 1974년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기근 이후 극빈자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을 대출해줬다. 처음엔 실험적으로 시도했지만 빈곤층의 변화는 놀라웠다. 소액을 바탕으로 자립하는 빈곤층이 대거 늘어난 것이다. 이 성공에 고무된 유누스는 1983년 그라민 은행을 법인으로 설립했다.

무담보 신용 대출 개념은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고 수많은 국가나 비영리기구들이 벤치마킹에 나섰다. 유누스는 ‘마이크로 크레딧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별명과 함께 2006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그라민 은행과 유누스는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라민 은행이 고금리 대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라민 은행이 자회사와 산하기관 등 수십 개를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산하 기관이 대부분이지만 방글라데시 통신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최대 통신사인 그라민텔레콤 등 영리 추구 회사도 여럿이다. 이에 대해 그라민 은행이 빈민구제라는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하시나 총리는 “유누스 집안이 이들 사업을 통해 재산을 불렸다”고 지적한다.

유누스가 노벨상을 받은 이듬해 정당 ‘나고리크 샤크티’(시민의 힘)를 만들고 정치에 입문한 것은 순수성을 의심받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유누스는 하시나 총리 등 기존 정치권과 갈등을 빚은 끝에 1년도 안돼 정계 진출을 포기했다. 하지만 하시나 총리는 유누스를 겨눈 칼을 내리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010년 유누스가 법률상 정해진 정년을 넘겼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라민 은행에 해임을 요구했다. 2013년엔 그라민 은행의 국유화를 추진하다 안팎의 반대로 중단되자 유누스를 탈세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앙숙인 유누스와 하시나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