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이 넘는 이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을 남기며 공분했던 ‘영광 여고생 성폭행 사건’의 10대 가해자들이 항소심에서 가중된 형량을 선고받았다. 당초 인정된 성폭행 혐의에 사망에 이르게 하고도 방치한 혐의(치사)가 추가됐다.
광주고법 형사1부(김태호 부장판사)는 2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군(19)에게 단기 4년 6개월~장기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9년을 선고했다. 공범인 B군(18)에게도 징역 2년 6개월~징역 5년의 원심을 파기하고 단기 6년~장기 8년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명에게 성폭력치료프로그램 12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기관 취업제한 5년도 명령했다.
형량이 늘어난 이유는 이들이 피해자의 사망 가능성을 예상하고도 방치한 ‘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A군 등에 의해 과도한 음주를 하고 쓰러졌다. A군 등은 강간을 한 후 움직임이 없는 피해자를 방치하고 달아나 치사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영광 여고생 성폭행 사건’은 피해자C양(사망 당시 16세)의 친구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1심의 판결 형량을 문제 삼으며 세간에 알리면서 공론화됐다. ‘억울하게 죽은 친구와 친구를 죽음까지 몰아간 범죄자들을 강하게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청원을 올린 친구에 따르면 A군 등은 지난해 9월 전남 영광군 한 모텔 객실에서 술 게임을 계획하고 미리 숙취해소제를 마신 뒤 C양을 불러냈다.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C양을 계속 지게 만들어 술을 마시게 했다. 이들은 사건 며칠 전 SNS에 ‘이틀 뒤 여자 XX사진 들고 올라니까’는 식의 범행 예고 글을 남기기도 했다. 1시간 30분 만에 C양은 소주 3병을 마셨다. 쓰러진 C양을 여러 명이 성폭행하고, 관계 장면 등을 촬영했다. A군 등은 쓰러진 C양을 버리고 달아났고, C양은 결국 ‘알코올 과다 치사’로 사망했다.
친구는 “이 사건이 친구와 유가족을 위해 알려지지 않았으면 했지만 이렇게 청원을 하게 된 계기는 지금도 이런 범죄는 계속 일어나고 있고 가해자들은 형이 끝난 후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면서 “징역이 약할수록 법원을 기만하고 이러한 범죄는 늘어갈 것이다. 저희는 이런 아픈 일이 또 생기는 것을 막고자 청원을 하게 됐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21만7000여명 동의 서명을 남겼다. 청원 답변 기준을 넘긴 이 청원에 청와대는 “정신을 잃도록 고의로 술이나 약물을 사용한 뒤, 성폭행하고 이를 촬영하는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의 대응이 달라지고 있다”며 “청원을 통해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준 친구분들, 그리고 피붙이를 잃은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답했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