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사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74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을 통해 북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북한은 가시권에 들어온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과 관련해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미국의 양보를 촉구했다. 김 대사는 연설에서 ‘비핵화’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어떤 조치를 내놓을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김 대사는 남한에 대해 ‘이중적 행태’라고 비판했으나 비난 수위는 조절했다. 북한은 대북 재재를 주도하는 미국과 유엔도 비판했다.
김 대사는 “조선반도에서 평화와 안전을 공고히 하고 발전을 이룩하는 관건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역사적 조·미 수뇌상봉과 회담에서 합의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을 철저히 이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고정 레퍼토리인 싱가포르 6·12 북·미 공동성명 이행 주장을 또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김 대사는 “조·미 공동성명이 채택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조·미 관계가 전진하지 못하고 조선반도 정세가 긴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매달리면서 정치·군사적 도발 행위들을 일삼고 있는데 기인한다”고 비판했다.
김 대사는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동지께서는 역사적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게 필요하고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지켜볼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했다”면서 “우리는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가질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 보고 미국 측과 마주 앉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를 표시했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남한도 겨냥했다. 그는 “불과 한 해 전, 북과 남 온겨레와 국제사회를 크게 격동시킨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은 이행단계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졌다”면서 “(이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고 돌아앉아서는 우리를 겨냥한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 군사연습을 강행하고 있는 남조선 당국의 이중적 행태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사는 이어 “우리를 겨냥한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미국·남조선 합동 군사연습은 판문점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며 도전”이라며 “북남관계 개선은 남조선 당국의 사대적 본성과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으로 민족 앞에 지닌 자기 책임을 다할 때에만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사는 대북 제재를 가하는 유엔 안보리에 대해서도 날선 말을 던졌다. 그는 “세계평화와 안전의 중대한 사명을 지닌 유엔 안보리가 국제적 정의는 안중에도 없이 특정국가의 전략적 이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 선택적인 나라에 대한 제재 압박과 제도 전복까지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지난해까지 리용호 외무상이 3년 연속 유엔총회에 참석해 일반토의 연설을 했다. 그러나 올해는 리 외무상이 불참하고 김 대사가 연설했다. 국가정상급이나 외교장관급이 서는 유엔총회 연설 무대에 대사급을 내세운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연설에서 리 외무상은 “비핵화를 실현하는 우리 공화국 의지는 확고부동하지만”이라며 비핵화라는 단어를 거론했지만 김 대사는 비핵화라는 말을 쏙 뺐다. 이 외무상은 또 지난해 연설에서 “북남 사이에 대화가 활성화하고 화해와 협력의 기운이 높아졌다”고 호평했다. 그러나 김 대사는 올해 연설에서 남한에 대해 비판적인 톤을 드러냈다.
이번 김 대사의 기조연설은 9분 남짓으로, 지난해의 15분에서 크게 짧아졌다. 통상 회원국별 기조연설에 15분씩 배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간결한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