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한인 의류업체 ‘포에버21’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아시아·유럽에서는 철수하고, 멕시코·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영업을 지속하기로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9일(현지시간) 저가 의류로 패션 대중화에 기여해온 의류업체 포에버21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포에버21은 미국 델라웨어주에 있는 연방 파산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11조)에 따라 신청서를 제출했다. 챕터 11조는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 ‘즉각 청산’이 아니라 파산법원의 감독 하에 영업과 구조조정을 병행하며 회생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한다.
통신에 따르면 포에버21은 글로벌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캐나다에 있는 사업체를 폐쇄하고 아시아, 유럽에서는 철수한다. 다만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영업을 지속할 방침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포에버21이 캐나다, 일본을 포함한 40개 국가에서 사업체를 폐쇄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178개 점포, 전세계를 통틀어서는 최대 350개 점포가 문을 닫게 된다. 하지만 매장 소유주가 운영하는 미국 내 수백개 점포와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에 있는 점포, 웹사이트 운영은 계속하기로 했다.
포에버21은 ‘영원한 21세를 위한 옷’이라는 의미로, 198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이민 온 장도원·장진숙 부부가 설립한 의류회사다. 이들 부부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피게로아 거리에 ‘패션21’이라는 이름의 첫 의류판매장을 열었다. 처음 83㎡(25평)에 불과했던 이 옷가게는 이후 전세계 40여개 나라에서 800곳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는 미국의 5대 의류회사로 성장했다.
장씨는 1984년에 창업하기까지 경비와 주유소 직원, 커피숍 직원 3가지 일을 동시에 하며 돈을 모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포에버21을 키워낸 두 사람은 자산 규모 수조원의 억만장자가 됐고, 미주 한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1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포에버21은 덩치 키우기에만 몰두하면서 내실을 다지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38억달러(현재 가치 약 4조5500억원) 매출을 기록하고 2016년까지도 매장 확대에 주력하던 포에버21은 전자상거래로의 추세 전환에 적응하지 못했다. 또 최신 유행을 선도하지 못하고, 싸지만 그저그런 옷이라는 인식까지 생기면서 인기를 잃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NYT는 “포에버21이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며 “미국 내 소매환경이 기술발전에 따라 얼마나 급격하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장씨 부부의 자녀인 린다 장 부회장은 NYT에 “우리가 6년도 안 되는 기간에 7개국에서 47개국으로 뻗어갔는데, 그 때문에 많은 문제가 닥쳤다”며 “매장 방문객들이 줄고 온라인으로 매출이 더 많이 넘어가는 등 소매산업이 변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황을 단순화해서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는 것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절차(파산보호 절차)와 관련해 우리가 기대하는 바”라고 밝혔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이 입수한 파산 신청서에 따르면 포에버21의 부채는 자회사의 것까지 합산했을 때 10억~100억달러(1조2000억~12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포에버21은 구조조정을 위한 자금 3억5000만달러(약 4200억원)를 확보한 상태다. 또 기존 채권자들로부터 2억7500만달러(약 3292억원), TPG 식스스트리트 파트너스와 부속 펀드로부터 신규 자금 7500만달러(약 898억원)를 유치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포에버21이 유치한 자금을 통해 상품권, 환불, 교환, 판매 등 회사 운영을 정상적으로 이어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