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금 ‘이중고’에 빠져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맹공도 견뎌내야 하고, 접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승리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지지자들 사이에서 바이든이 이런 ‘쌍끌이 파고’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이든은 부통령이었던 2016년 초 아들 헌터가 이사회 멤버로 있던 우크라이나 민간 가스 회사에 대해 수사를 벌였던 빅터 쇼킨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약 1조 1800억원)에 달하는 미국의 대출 보증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25일 통화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 부자의 뒷조사를 독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탄핵 절차가 개시되면서 트럼프 선거캠프는 지난주 1000만 달러(약 120억원)의 선거자금 모금 계획을 꺼내들었다. WP는 이 자금의 대부분이 바이든 공격에 집중될 것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측은 긴장하고 있다. 바이든 캠프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의혹 공격을 방어하고 역공을 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제한 모금과 광고를 할 수 있는 ‘슈퍼 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바이든의 최측근인 래리 라스키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면서 “바이든 캠프는 트럼프에 맞서기 위한 자원이 너무 빈약하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지지자들은 바이든이 강공책을 택할 경우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바이든이 트럼프 대통령과 흙탕물 전쟁을 펼칠 경우 민주당 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어부지리를 누릴 것이라는 얘기다.
바이든의 측근 딕 하푸틀리안은 “트럼프는 바이든을 괴롭힐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민주당의 트럼프’가 돼서 (바이든이) 소리치고 거짓말을 한다면 사람들은 다른 경선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과 양강 구도를 형성한 워런 상원의원도 인디안 혈통이라고 주장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포카혼타스’라는 조롱을 받은 뒤 지지율이 급락했던 경험이 있다.
바이든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을 무시하고 유권자들이 공감하는 이슈에 집중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바이든은 미국의 ‘정상화’를 주창하면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그는 건강보험 등을 포함한 정책 이슈에 대해 매일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아들에 대해 선을 넘는 공격을 가할 경우 산발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8일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있었던 바이든의 선거자금 모금행사에서 행사를 주최한 배리 베이커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을 일삼는, 자기도취증에 빠진 반역자, 사기꾼”이라고 맹비난을 쏟았다. 그러나 바이든은 20분 동안의 연설에서 탄핵 사태나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든 진영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바이든이 무혐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탄핵 조사가 진행되면서 상황이 어디로 튈지에 대한 불안감은 안고 있다. 바이든이 아무 잘못이 없더라도 트럼프 진영이 의혹을 만들어 공격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바이든 선거캠프는 ABC방송, CBS방송, CNN방송, NBC방송, 폭스뉴스 등 미국 주요 방송사 임원과 앵커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를 출연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캠프가 이들 방송사에 “줄리아니가 트럼프를 대신해 틀린 것으로 입증된 거짓 음모 이론을 퍼뜨릴 수 있도록 줄리아니의 출연을 계속 허용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신공격에 바이든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품격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이 더 집요해지고, 민주당 내 경선주자들까지 바이든을 겨냥할 경우 바이든이 어떤 반격 카드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