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동안 윤석열 검찰총장을 검사다운 검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 총장은 검사로서 정도가 벗어났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특수부를 지휘하는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이것(조국 법무부 장관 사건)을 (윤 총장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윤 총장은 이것으로 너무 확고하게 심증을 형성한 것이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다면 인사조치가 있어야 한다. 한동훈 검사장 등 특수부들이 책임져야 한다.”
이 발언들은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지난 24일 오후 유튜브채널 ‘알릴레오 시즌2’ 첫 생방송에서 한 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치 검사’가 됐고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의 보고를 통해 조 장관 가족의 범죄 혐의를 확신했다는 취지다. 조 장관 수사를 하는 특수부 검사들이 수사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이들을 좌천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유 이사장 발언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많은 여권 지지자들은 유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을 시청하며 해당 발언을 여과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한동훈’이라는 검색어는 ‘다음’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윤 총장과 한 검사장은 ‘적폐 검사’로 지목됐다.
법조계에서는 이같은 상황을 ‘기묘한 역설’이라고 말한다. 윤 총장과 한 검사장은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다. 재벌 총수, 전직 대통령, 전직 대법원장 등을 구속하는 성과를 냈다. ‘적폐 청산’ 수사를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권 지지자들은 당시 수사에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지금은 180도 다른 태도다. 적폐 청산의 상징이 적폐의 상징이 된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밤낮 가리지 않고 적폐 청산 수사를 해온 검사들이 조 장관 수사한다고 한 순간에 역적이 됐다”며 “결국 검찰의 칼은 야당에게나 휘두르는 것이라는 게 여권과 청와대의 인식이어서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윤 총장은 검찰을 대표하는 특수통이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댓글 조작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았던 그는 수사 외압 의혹이 일었던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 윗선에 항명했다. 수사팀은 나오는 증거대로 국정원 직원들을 수사하려 하는데 윗선에서 자꾸 부당한 개입을 한다는 취지였다. 윤 총장은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외압 의혹을 폭로해 징계를 받았다. 이후 인사에서는 여지없이 좌천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윤 총장이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은 것에 대해 “수사에 적극적이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징계는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당시 윤 총장을 ‘진정한 검사’ ‘국민 검사’라고 지지했다. 윤 총장과 함께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았던 국정원 수사팀 부팀장 박형철 부장검사는 현재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윤 총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는 그해 12월 윤 총장을 수사팀장으로 파견 받았다. 윤 총장은 당시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 2팀장이었던 한동훈 검사장 등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특수통 검사들을 발탁해 수사에 나섰다. 특검은 이듬해 2월 28일 공식 활동을 종료할 때까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13명을 구속했다. 특히 이 부회장을 상대로는 치밀한 수사를 했다. 그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되자 보강 수사를 거쳐 영장을 재청구해 결국 구속했다. 특검팀은 그해 1월 13일 이 부회장을 소환해 22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 지금은 ‘적폐’가 된 한동훈 검사장이 이 부회장을 구속한 검사다.
당시도 현재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박영수 특검은 당시 자택 부근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박단체들에 의해 살해 협박까지 당했다. 친박단체들은 박 특검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에 불을 붙인 뒤 “이 XX들은 몽둥이맛을 봐야 한다”고 외쳤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윤 총장은 출세 가도를 달렸다. 청와대는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고검장급이 임명됐던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검사장급으로 낮추면서까지 윤 총장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윤 총장은 한 검사장을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발탁했다. 3차장은 서울중앙지검 산하 특수부를 총괄하는 자리다. 한 검사장은 윤 총장과 과거 대검 중앙수사부 시절부터 함께 일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이 되면서 수사 일선에서 물러난 뒤 특별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일을 한 검사장에게 맡긴 것이다.
한 검사장의 과거 수사 이력은 화려하다. 그는 2003년 대선 자금 수사의 실마리가 된 중수부의 SK그룹 분식회계 사건 수사팀에 참여해 최태원 회장 구속을 주도했다. 이어진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도 참여해 성과를 냈다. 한 검사장은 박영수 전 특검이 중수부장이던 2006년 윤 총장과 함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수사해 구속했다. 2015년에는 서울중앙지검 초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장을 맡아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을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 2팀장을 맡았던 2016년에는 대우조선해양 비리 사건을 수사했다. 이때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을 수사해 재판에 넘겼다.
한 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된 뒤에는 적폐 수사에 속도를 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2018년 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을 11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박 전 대통령 등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했다는 내용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도 한 검사장 산하에서 이뤄졌다. 한 검사장은 양 전 대법원장을 지난 2월 구속기소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을 겨냥하는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도 한 검사장 산하 특수부가 수사했다.
한 검찰 특수부 출신 변호사는 “재계 순위 1위인 재벌 총수, 보수 진영 출신 전직 대통령 2명, 전직 대법원장, 조선일보 주필이 한동훈 검사장의 수사를 받고 재판 중이다”라며 “보수 진영이 한 검사장을 ‘정치 검사’라고 비판할 수는 있다고 보지만 진보 진영에서 비판하는 것은 상당히 어색하다”고 말했다.
한 검사장의 수사는 모두 ‘윤석열 중앙지검장’ 체제 아래서 이뤄졌다. 한 검사장은 해당 수사가 진행되던 와중에 주변에 “윤 검사장이 ‘외풍’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수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며 “중앙지검 검사장과 검찰총장이 하는 역할은 수사팀이 수사에만 집중할 수 있게 외압을 차단해 주는 것”이라고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적폐 청산 수사에 반발하는 세력이 많았으나 윤 총장이 버팀목이 돼 이를 돌파할 수 있었다는 취지다.
이번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27일 “검찰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전 검찰력을 기울이다시피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검찰은 성찰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은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기관이므로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대검은 문 대통령 발언 직후 “헌법 정신에 입각해 인권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법 절차에 따라 엄정히 수사하고 국민이 원하는 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이는 “절차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윤 총장의 기존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하던 대로 수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한 변호사는 “조 장관에 수사에 대한 여권 비판의 근원은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물어’라는 인식으로 요약된다”며 “적폐 청산 수사를 할 때는 아무런 비판이 없었던 게 그 증거”라고 했다. 이어 “진보 정권도 검찰을 결국 ‘사냥개’로 보는 것이어서 안타깝다”며 “이런 인식에서 나온 검찰 개혁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