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현역 물갈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맞수인 자유한국당의 인적 쇄신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보수 대통합, 계파 갈등이란 두 변수가 한국당의 인적 쇄신을 난해한 ‘고차 방정식’으로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당의 내부 개혁을 전담키로 한 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가 정치 신인에게 최대 50%에 달하는 가점을 주는 내용의 공천룰을 지도부에 보고한 것은 지난 7월 중순이다. 탈당 이력이 있거나 해당 행위를 한 인사들에 대해서는 최대 30%의 감점을 주기로 해 ‘세대교체’를 강조한 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특위 위원장인 신상진 의원도 “현역 물갈이가 50%는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인적 쇄신론에 불을 지폈지만 당 지도부가 공개 언급을 자제하면서 논의는 금세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사이 여권에서 자천타천으로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가 거론됐고, 대규모 현역 물갈이설이 제기되면서 총선 공천이 다시 정치권의 주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릴레이 삭발과 같은 투쟁 일변도 전략에 피로감을 느낀 일부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내부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여권에 돌아선 국민들의 지지를 한국당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전 정권에서 잘못한 부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며 인적 쇄신의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는 내년 총선에서 적용될 공천룰을 물밑에서 작업 중이다. 다만 보수 통합 작업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공론화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보수 정치권이 바른미래당과 우리공화당으로 분열된 만큼, 이탈자들을 받아들인 뒤에 인적 쇄신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역 의원들도 공천을 보장받은 이들이 없는데, 통합 작업보다 공천 논의가 앞설 경우 한국당 밖의 의원들이 유리한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섣부른 공천 논의가 계파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지도부에게는 부담이다. 당 안팎에선 개혁 공천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 당의 친박근혜 색채를 덜어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지만 특정 계파를 겨냥할 경우 친박과 비박계가 맞붙었던 지난 20대 총선 공천처럼 인적 쇄신 작업이 계파 논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소위 ‘진박 공천’으로 국회에 입성한 친박 의원들 대다수가 초재선이라 ‘불출마 선언’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실리와 명분을 모두 얻기 힘든 상황 자체가 지도부로서는 ‘딜레마’라는 평가다.
한편 한국당은 공천에 앞서 당무감사위원 9명을 전원 교체해 황 대표 체제를 강화했다. 당무감사위원은 각 지역구의 당원협의회와 시도당에 대한 감사를 진행, 공천 기준이 되는 평가자료를 만든다. 당무감사위원장에는 황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배규한 백석대 석좌교수가 임명됐다. 배 교수는 지난 6월 황 대표의 특별보좌역으로 임명된 바 있다. 한국당은 내달부터 전국 당협을 대상으로 한 감사에 돌입, 공천 사전 작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