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에 있다”는 군 당국의 공식 발표가 나왔는데도 함박도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논란은 ‘함박도는 북한 땅이냐, 남한 땅이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북한의 함박도 군사기지화 움직임에 대한 우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행정오류로 남한 주소지 등록”
함박도는 등기부등본에 소유권이 산림청으로 기재돼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소유권 논란이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관보에 공개된 해양수산부 고시에 따르면 함박도 주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으로, 현재 이 주소는 유지되고 있다. 면적은 1만9971㎡(약 6041평)이며, ‘절대보전’ 구역으로 분류돼 있었다.
정부는 ‘함박도가 국유지로 등록돼 왔다’는 사실에 대해 행정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산림청이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 등에 따르면 박정희정권 시절 내무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지적공부(地籍公簿)에 미등록 도서(島嶼)를 등록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함박도는 1978년 12월 30일 ‘국가(강화군청) 소유 토지’로 처음 등록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산림청과 해양수산부는 각각 2005년과 2010년 함박도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함박도는 2005년 12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고시됐다.
정부는 지난 16일 국방부 대북정책관을 팀장으로 하는 ‘민관 합동검증팀’을 꾸려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국방부는 “서해 NLL 좌표를 연결한 지도상의 선과 실제 위치를 비교한 결과, 함박도는 서해 NLL 북쪽 약 700m에 위치해 북측 관할 도서인 것을 확인했다”며 검증결과를 지난 20일 밝혔다. 이어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측에서도 함박도가 서해 NLL 북쪽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지난 16일에 열린 함박도 관련 ‘유관부처 통합 협조회의’에서 “함박도는 NLL 이북에 있는 북한 관할 구역”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의에는 국토교통부와 해수부, 행정안전부, 산림청, 강화군청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다만 민관 합동검증팀은 함박도가 국유지로 등록돼 왔던 이유에 대해 추가 확인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국방부와 국토부 등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행정 오류’를 바로잡을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22일 “과거에 주소지를 일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함박도가 우리 땅에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후 함박도는 NLL과 군사분계선(MDL) 인근 땅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는 과정에서 군사시설보호구역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함박도는 현재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구역’ 중 통제보호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통제보호구역은 고도의 군사활동 보장이 요구되는 군사분계선 인접지역과 중요한 군사기지·군사시설의 기능을 보호해야 하는 구역으로 정해진다.
함박도, 최전방 北군사기지화 우려
‘함박도가 행정 오류 때문에 남한 땅으로 등록돼 왔다’는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군사적인 문제는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이 인천항으로부터 55.2㎞ 떨어져 있는 함박도를 최전방 군사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만약 북한군이 함박도를 무장화한다면 안보에 큰 문제가 된다”며 “포병 무기체계뿐 아니라 대함 무기를 배치할 경우도 큰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지난 20일 전했다.
북한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함박도 주변에서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군 당국에 북한군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된 것은 2015년부터였다. 북한은 2015년과 2016년에 함박도 인근의 무인도 두 곳에 감시장비를 설치했다. 2017년 5월쯤 북한은 배로 함박도에 물자와 장비를 나른 뒤 감시장비를 설치하는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현재 함박도에는 철탑으로 보이는 시설물에 레이더 감시장비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함박도 감시시설 설치 시점에 대해 “2017년 5월 정도”라고 답변했다. 이어 문재인정부 출범 시점과 거의 같은 시기 아니냐는 한 야당 의원 질의에 “공사가 시작된 시점은 그 정도로 보고 (있으며), 아마 설계나 이런 것들은 그 이전에 이뤄졌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한국군 당국은 현재까지 해안포를 비롯한 공격무기가 함박도에 배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브룩스 전 사령관도 “북한이 (현재) 함박도를 무장시키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솔직히 함박도에 감시초소를 배치하는 정도는 큰 손해는 아니며 9·19군사합의의 정신에도 큰 문제가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북한이 함박도에서 인천공항까지 감시할 수 있다’는 야당 의원 지적에 “유사시 한 방에 조준해서 (함박도 감시시설을) 날려 버릴 수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군 소식통은 “함박도에 한국군 함정 움직임을 파악하는 감시 레이더가 설치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인천공항이나 육지까지 감시할 만한 성능은 아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