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실각 위기에 빠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노골적으로 냉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선 전까지 네타냐후 총리를 ‘좋은 친구’라며 추켜세우며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총선에서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총리직 유지마저 불투명해지자 주저 없이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총선 결과에 대해 묻는 취재진 질문에 “우리 관계는 이스라엘과 맺은 것”이라며 “무슨 일이 생길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양국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 간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관계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총선 전까지 그를 ‘좋은 친구’라 부르며 추켜세웠던 것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선을 사흘 앞둔 지난 14일 미국·이스라엘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국민에게 외교·안보 분야 전문성을 강조하는 네타냐후 총리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분쟁지역인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는 포고문에 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5선 연임이 불투명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돌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통화를 했느냐는 질문에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스라엘 총선 결과에 의구심을 갖느냐는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며 “표차가 근소한 것으로 모두들 알고 있다. 무슨 일이 생길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정치적 자산으로 홍보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치명타를 가한 셈이 됐다. 중동 전문가인 타마라 코프만 위트스 브루킹스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얼음처럼 차갑다”고 논평했다. 댄 샤피로 전 주이스라엘 미국대사는 워싱턴포스트(WP)에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가 궁지에 몰렸음을 간파하고 거리를 두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패배자(loser)’와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네타냐후 총리와 공조하며 초강경 중동 정책을 펼쳐왔다. 네타냐후 총리가 실각하고 온건파가 집권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일정 부분 정책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선에서 유대계 표심을 결집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 역시 차기 이스라엘 정부와의 관계 설정을 두고 고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