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는 추석 연휴에도 멈추지 않았다. 연휴 마지막날 홍콩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미국 성조기를 흔들며 ‘광복홍콩, 시대혁명’ ‘자유를 위해 싸우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전날에는 반중 시위대와 친중 시위대 간의 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져 부상자가 속출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명보 등에 따르면 홍콩 시위를 주도해온 민간인권전선이 신청한 집회를 경찰이 불허했음에도 수많은 인파가 홍콩섬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거리행진을 이어갔다.
홍콩섬 코즈웨이 베이에는 오후 1시 30분쯤부터 시위대의 상징인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집결해 ‘5대 요구조건, 하나도 빠지면 안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과 함께(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 Kong)” “홍콩인 힘내라” “베이징에 저항하자” 등의 구호도 흘러나왔다. 시위대 사이에선 미국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영국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도 보였다.
소고 백화점 부근에 성조기를 들고나온 콤 웡(35)은 “성조기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추구하는 홍콩인의 정신을 나타낸다”며 “홍콩 정부는 시위대의 5가지 요구를 거부하고 있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가한 알란 찬(28)은 “나는 금지된 시위에 참가하는 게 두렵지만, 그런 걱정은 홍콩의 암울한 미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쇼핑거리인 코즈웨이 베이에 모인 시민들은 완차이를 거쳐 정부 청사가 있는 에드미럴티, 센트럴까지 행진을 벌였다. 홍콩 섬 일대에는 시위대의 물결과 구호소리가 오후 내내 끝없이 이어졌다. 앞서 1000여명의 시위대는 오후 12시쯤부터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모여 집회를 갖고 홍콩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폐기 승인을 영국에 촉구하는 청원서를 총영사관측에 전달했다.
전날인 14일 오후에는 홍콩 시내 곳곳에서 반중 시위대와 친중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친중국 시위대 수백 명이 카오룽베이 지역의 아모이 쇼핑몰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흔들고 중국 국가를 부르자 반중 시위대가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른 ‘홍콩에 영광을’ 노래를 부르며 몰려들면서 주먹다짐이 시작됐다. 친중 시위대는 국기봉을 휘두르고, 반중 시위대를 우산으로 맞서면서 부상자가 속출해 25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홍콩 경찰은 주로 남색옷을 입은 중장년층의 친중 시위대는 놔두고 검은 옷을 입은 반중 시위대 젊은이들만 20명 가까이 체포해 비난을 받고 있다고 명보 등이 전했다.
경찰은 친중 시위대가 검은 옷을 입은 젊은이를 가리키자 즉시 체포했고, 오성홍기를 든 친중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반면 한 시민이 “남색 옷을 입은 사람이 시민을 구타한다”고 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그를 데리고 빠져나갔다. 한 여성이 젊은이들을 마구 구타하는 경찰에게 무릎을 꿇고 “제발 때리지 말라”고 애원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친중국 시위대가 경찰의 반중국 시위대 체포를 적극 돕기도 해 논란을 빚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추석인 중추절(中秋節)에도 시위를 이어갔다. 시민들은 13일 밤 도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유명 관광지인 빅토리아 피크와 라이온 록에 올라 서로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고 전등과 레이저 포인터를 비추며 ‘홍콩에 영광을’ 등을 불렀다.
한편 캐리람 행정장관은 중국 매체와 친중파 사이에서 홍콩 사법부가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체포된 시위대의 보석 결정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이 나오자 사법부를 적극 홍호하고 나섰다.
람 장관은 “법치와 사법독립은 홍콩의 핵심 가치로서 모두가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누구도 법관과 법원에 압력을 가하거나, 인신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송환법 반대 시위가 본격화한 후 1300여명이 체포됐고 이 중 최소 191명이 경찰관 공격이나 폭동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164명이 보석으로 풀려났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