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최대의 석유 생산시설이 예멘 반군의 드론 공격을 받았다. 사우디 석유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면서 국제 유가 폭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다. 이달 말 유엔 총회를 앞두고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고조되던 대화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가 됐다.
예멘 후티 반군은 14일 새벽(현지시간) 드론 10대를 동원해 사우디 내 석유 생산시설 2곳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알마시라 방송을 통해 밝혔다. 사우디 내무부는 쿠라이스 유전과 아브카이크 탈황 석유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했다고 확인했다. 쿠라이스 유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곳이다. 아브카이크의 탈황 시설 역시 사우디의 핵심 석유 시설로 하루 처리량이 700만 배럴에 달한다.
이번 공격으로 사우디의 석유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테러 공격으로 하루 평균 57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이 중단되게 됐다”면서 “이번 공격은 사우디 왕국의 핵심 시설뿐만 아니라 글로벌 석유 공급망과 안보, 더 나아가 글로벌 경제를 겨냥했다”고 밝혔다. 570만 배럴은 사우디 국영 에너지기업 아람코 석유 생산량의 절반에 달한다.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면 5~6%에 해당한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가 2014년 예멘 내전에 개입한 이후 공항과 석유 시설 등 사우디 인프라를 겨냥한 드론 공격을 여러 차례 시도해왔다. 하지만 사우디의 석유 생산에 차질이 생길 만큼 큰 피해를 입힌 것은 처음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우디 석유 생산시설이 입은 피해로는 사담 후세인이 스커드 미사일을 쏘아대던 1991년 걸프전쟁 당시까지 포함해 가장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아람코는 인명 피해는 없다고 밝혔지만 석유 생산이 언제 정상화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은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에 “이란은 긴장 완화를 촉구하면서도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 전례 없는 공격을 가했다”며 “미국은 모든 국가들이 이란의 이번 공격을 공개적으로 분명히 규탄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러면서 “미국은 파트너와 동맹국과 함께 에너지 공급 안정에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 공격의 책임은 이란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대화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도 사실상 무산됐다. 최근 대(對)이란 초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격 경질되면서 악화일로로 치닫던 양국 관계가 긴장 완화 수순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한때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전 보좌관을 경질하기 직전 이란 제재 완화를 시사했다는 미국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말 유엔 총회 기간 중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음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미·이란 정상회담이 실제로 무산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더욱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제재 완화를 고려했던 점을 미뤄, 북한에도 보다 유연한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