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또 ‘독재자 예찬’…이집트 대통령에 “제일 좋아하는 독재자”

입력 2019-09-15 15:28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왼쪽)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향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독재자”라고 치켜세우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는 13일(현지시간) 지난달 26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뒷이야기를 전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문제 발언을 소개했다. 당시 미·이집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엘시시 대통령을 기다리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이집트의 당국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회담장에서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독재자는 어디에 있나”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농담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엘시시 대통령의 행방을 묻는 그 질문에 현장 분위기는 침묵으로 싸해졌다고 말했다.

엘시시 대통령이 해당 발언을 보고 받거나, 직접 들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회담장에는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사미흐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 바바스 카멜 이집트 정보국장 등 양국의 고위 관료들이 함께 대기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엘시시 대통령은 국방부장관이었던 지난 2013년 7월 이집트의 첫 민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를 쿠데타로 축출한 뒤 이듬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독재자다. 그는 지난 4월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연임 제한 조항도 완화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2030년까지 장기 집권할 토대를 마련했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이래 엘시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어져왔다.

미 국무부와 유엔, 비정부단체(NGO)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엘시시정부는 수천명에 달하는 정적들을 구금한 뒤 그들을 고문·살해하는 악행을 저지르며 정치적 반대파들을 억압해왔다. 하지만 백악관은 이날 이집트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담은 보고서와 관련해 공개적 비판 성명을 내놓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엘시시 대통령을 칭찬하기 바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미 대선에서 자신이 승리한 이후 자신과 엘시시 대통령의 대화가 시작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두 사람의 관계를 자축했다. 그는 “엘시시 대통령은 터프하고 좋은 사람이다. 이집트에서 환상적인 일을 해냈다”며 찬사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재자 예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그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권위주의적 통치로 전세계에 악명을 떨치고 있는 지도자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왔다. 자유주의 진영의 수호자라는 미국의 위상에 해를 입히고 있는 것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