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이란 책 한 권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가 된 토마 피케티(48·파리경제대 교수)가 돌아온다.
피케티의 6년 만의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지난 12일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출간됐다. 현재 18개 언어로 번역이 진행되고 있으며 영어판은 내년 3월 출간된다. 한글판은 출판사 문학동네가 판권을 따내 연내 출간을 목표로 번역 중이다.
1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이 책은 피케티의 연구 주제인 불평등 문제의 기원이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있음을 역사적으로 논증한다. 전작 ‘21세기 자본’은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등 서방 선진국 20여개국의 300년에 걸친 장기 통계를 분석해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r>g’, 즉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상회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책의 후속작 성격이 강한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불평등이 인간 사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거나 기술·산업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라 정치와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사실을 논증한다. 이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바꾸려는 노력을 통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특히 미국과 서유럽 등 불평등이 심화돼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굳어진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정치체제의 변혁을 통해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피케티는 주장한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집권 시기 시장의 자유를 극대화한 경제정책의 부작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피케티는 지난 12일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불평등을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한 모든 담론은 역사적으로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면서 “불평등은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문제로, 역사적으로는 소유권·교육·조세 등을 조직하는 대안적 방안이 늘 존재해왔다”고 말했다.
피케티가 세계적으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의 해법이자 대안으로 내세운 방안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가가 청년에게 거액의 종잣돈을 제공한다는 아이디어다.
프랑스를 예로 들면, 만 25세가 되면 1인당 자산의 평균치의 25%인 12만 유로(1억5000만원)의 기본소득을 청년에게 일괄 지급해 투자금으로 활용하거나 자산증식의 종잣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외에도 상속세를 자산의 정도에 따라 최대 90%까지 올리는 방안, 최소 0.1%에서 최대 90%의 부유세 차등 부과, 어떤 주주도 한 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의 10%를 초과해 가질 수 없도록 제도화하는 방안 등을 불평등 해소의 아이디어로 제시한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도 범세계적 누진세 도입, 사회적 국가의 건설, 글로벌 자본세 등을 불평등 해소 방법으로 제안했다.
피케티는 불평등 문제를 막기 위한 민주주의와 토론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간에서도 불평등의 심화를 막기 위한 논의를 경제학자가 독점해서는 안 된다면서 시민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이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케티는 인터뷰에서 “그동안 미디어와 시민들, 정치인들, 사회과학자들은 경제 문제를 자칭 전문가에게만 맡겨뒀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경제 영역을 민주주의 공론장의 바깥에 둔 것이지요. 잘못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피케티를 세계적인 스타 경제학자로 만든 ‘21세기 자본’은 그동안 40개 언어로 번역돼 250만부가 팔렸다. 국내에서도 10만부가 넘게 팔렸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