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볼턴 자르고 김정은 감싸면서 北에 체제보장 약속

입력 2019-09-13 06:24 수정 2019-09-13 06:4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경질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것은 매우 큰 잘못이었다고 11일(현지시간)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앙(disaster)’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2018년 5월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렸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회담 당시 배석해 회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존 볼턴(오른쪽)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P뉴시스


리비아 모델은 ‘선(先) 핵포기, 후(後) 보상’의 수순을 지칭하는 용어다. 그러나 체제 안정이라는 더 큰 의미가 있다.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2003년 3월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과 관계개선에 노력했다. 그러다가 카다피는 2011년 반정부 시위로 권좌에서 쫓겨난 뒤 해 같은 해 10월 숨어 있다가 사살됐다.

체제가 전복되고 지도자가 숨진 리비아 사례는 북한에겐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극도로 거부감을 나타내는 리비아 모델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함에 따라 볼턴 경질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가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볼턴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리비아 모델을 언급했을 때 일종의 매우 큰 잘못을 한 것”이라며 “그것은 좋은 언급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그가 리비아 모델을 언급했을 때, 그것은 재앙이었다”고 비난했다. 이어 “카다피에게 일어난 일을 보라”면서 “(리비아 모델 언급으로) 우리는 매우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됐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을 비판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을 감쌌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 모델 언급 이후)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김 위원장)는 볼턴과 아무것도 함께 하고 싶지 않아 했다”면서 “그런 말(리비아 모델)을 하는 건 터프함의 문제가 아니라 현명하지 못함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을 향해 리비아 모델을 거론한 볼턴의 행동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으며 김 위원장의 불만도 이해한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경제발전을 또다시 비핵화의 당근으로 제시했다. 그는 “북한은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면서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 한국 사이에 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국민을 갖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또 “나는 북한이 엄청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것(북한의 비핵화 이후 경제발전)은 가장 믿을 수 없는 일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면서 "며 “이것은 가장 믿을 수 없는 실험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경질 배경으로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것은 북한에 대해 체제 보장 메시지를 재차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에겐 카다피와 같은 말로가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리비아 모델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생각하는 모델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볼턴을 해고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 모델 폐기를 북한에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볼턴의 퇴장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 스타일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CNN방송은 “볼턴의 경질은 사실상 북한의 승리”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미 대선을 앞두고 허울뿐이더라도 북한·이란·아프가니스탄 등과 일련의 합의를 할 절박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대선을 의식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성급한 합의를 할 수도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