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추석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였죠. 전형적으로 ‘피해자다움’을 강요한 판결 내용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어요. 급하게 변호인단과 시민단체 규모를 늘리고 대책 회의를 하느라 잘 쉬지 못했어요. 이번 추석이야말로 마음 편안히 가족들과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희정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집행부 역할을 맡아온 배복주(48)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사진)는 지난 12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9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가 대법원에서 확정됐지만, 여성시민단체 158개로 구성된 공대위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피해자 김지은씨에 대한 악성 거짓 댓글을 단 2차 가해자들에 대한 소송을 마무리하고 ‘미투’ 폭로 이후 1년 6개월 간 싸워온 기록들을 정리, 공유하는 후속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배 대표는 “지난해 5월 안 전 지사의 측근들을 피해자에 대한 거짓 모욕 댓글을 단 혐의로 고발했는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지 9개월이 됐는데도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며 “2차 가해자 처벌까지 마무리하는 게 공대위의 남은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공대위는 재판 선고문이나 피해자 최후 진술서, 단체 성명서 등 그간 소송 과정에서 모아둔 서류를 정리한 후 백서나 토론회를 통해 공유할 예정이다. 혐의 인정이 쉽지 않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공대위가 어떻게 싸워왔고 이겼는지를 남겨 다른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박 대표는 “재판 과정에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선례가 잘 없어 막막했다. 이런 재판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록을 잘 해놓는 것도 공대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가해자는 대권주자였다”며 “그가 지녔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이번 판결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을 해 둬야 권력자들이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더욱 경각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김지은씨가 미투 폭로 직후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를 꼽았다. “지난해 3월 날씨가 한참 추울 때였어요, 서울서부지검 밖에서 공대위원들과 함께 밤을 샜죠. 아무래도 폭로 직후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크다보니 피해자가 노출되지 않도록 이동 지원을 해야 했어요. 사건 대응 초기다보니 긴장도 많이 됐고요.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들을 하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이 힘들었죠.”
박 대표는 지난해와 달리 이번 추석은 마음 편안하게 가족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후속 활동을 앞 두고 맘 편안하게 푹 쉬려고 합니다. 공대위 다른 위원들과 김지은씨도 그런 명절을 보냈으면 합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