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경기장에 들어가려다 구속된 여성이 재판을 앞두고 분신을 시도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전부터 축구 경기장에 입장하려는 여성들을 당국이 여러차례 체포해 여성 인권 침해 논란이 일었던 이란 사회인지라 국내외 비난 여론이 거세다.
로이터통신은 10일(현지시간) 분신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던 열성 축구팬 사하르 호다야리(30)가 전날 끝내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이란 명문 축구클럽 에스테그랄의 열성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블루 걸’(파란색은 에스테그랄의 상징색)이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지난 3월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 프로축구 경기가 보고 싶어 경기장을 찾았다. 하지만 출입문에서부터 비극이 시작됐다. 이란 경찰은 남장한 채 몰래 경기장에 들어가려는 그를 적발해 구속시켰다. 이란 사회가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란 검찰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다야리를 기소했다. 호다야리는 지난주 재판을 앞두고 징역 6개월 실형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충격에 법원 밖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그의 친언니는 이란 현지 언론에 “동생은 체포된 뒤 가르차크 구치소에 한동안 갇혀있었다”며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구치소에 있는 동안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란은 이슬람혁명 직후인 지난 1981년부터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불허했다. 관련 법 규정은 없으나 흥분한 남성 관중이 여성에게 욕설, 폭행, 성희롱·성추행 등을 가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서라는 황당한 이유였다.
그의 사망 소식에 국내외 여론은 들끓고 있다. 이란 축구 대표로 127경기를 뛴 알리 카리미는 트위터에 “호다야리의 죽음에 대한 항의 표시로 축구 경기장에 가지 말자”고 썼다. 국제사면위원회 중동지부 소속의 필립 루터는 “호다야리의 유일한 죄는 여성 차별이 법적 근거에 기반해 사회에 자리 잡아 삶의 모든 영역에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뿐”이라며 그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표했다.
호다야리가 생전 응원했던 에스테그랄은 유족에 위로를 전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탈리아 축구클럽 AS로마도 공식 트위터에 “로마의 상징색은 황색과 적색이지만 오늘만은 우리의 가슴도 호다야리의 푸른 색으로 물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이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축구 경기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시점이 됐다. ‘블루 걸’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이란에서는 지난달 13일에도 남장을 하고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 여러차례 경기를 관전한 여성들이 당국에 체포돼 논란이 일었다. 그들이 인터넷에 올린 관전 사진이 공공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였다. 당시 체포된 자프라 호슈나바즈(27)는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관전이 법으로 금지된 것도 아니고 경기장에서의 관전은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는 그간 이란 측에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허용치 않으면 이란 대표팀의 월드컵 출전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고 압박해 왔다. 이란축구협회가 이에 다음달 10일 이란에서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 일반 여성의 입장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보수 종교계의 반대가 거세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여성 축구팬의 비극적 죽음으로 여성의 경기장 입장을 허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질 것으로 보여 향후 변화에 관심이 몰린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