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사고 트라우마를 극복한 ‘생존의 두드림’…한인 선원 4명 전원구조

입력 2019-09-10 14:44 수정 2019-09-10 15:19
생존을 향한 두드림이 기적을 연출했다. 다시 한 번 해상 참사가 빚어질 뻔했으나 필사의 구조작업으로 전원 구조라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미국 해안경비대(USCG)가 9일(이하 현지시간) 미 동부 해안에서 전도됐던 현대글로비스 소속 자동차운반선 골든레이호 안에 고립됐던 한국인 선원 4명 전원을 구조했다. 미 해안경비대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지만 2014년 세월호에 이어 올해 헝가리 다뉴브강 참사까지 해상 사고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전도된 자동차운반선 골든레이호 안에 고립됐던 한국인 선원 1명이 9일(현지시간) 미 해안경비대에 구조된 모습. 미 해안경비대 트위터 캡처

바닷물에 잠긴 선체에서 들려왔던 ‘두드리는 소리’가 악몽을 기쁨으로 바꿔놓았다. 골든레이호가 전도된 것은 지난 8일 오전 1시40분쯤이었다. 미 해안경비대는 같은 날 오전 2시쯤 USCG는 골든레이호가 전복됐다는 통보를 받고 곧바로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선박에 승선한 24명 중 20명은 구조됐다. 그러나 선체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구조대원들이 선박 내부에 더 이상 진입하지 못했다. 구조되지 못한 4명은 모두 한국인 선원이었다.

사고가 발생한지 12시간이 지난 오후 1시 30분쯤 구조작업이 일시 중단됐다. 선체의 기울어짐 현상과 날씨, 화재의 영향 등이 발목을 잡았다. 시간은 흐를수록 불길한 전망은 커져갔다.

그러나 오후 6시 13분쯤 선박 안쪽에서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가 확인됐다. 기적의 시작이었다. 해안경비대의 존 리드 대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선체 내부에서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이것은 정말이지 구조팀에 동기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원들이 생존해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모든 게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해안경비대는 9일 오전 7시부터 헬리콥터 등 구조인력을 현장에 투입했다. 이어 낮 12시 46분쯤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골든레이호의 승무원 4명이 생존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안경비대는 먼저 2명을 구조한 데 이어 다른 1명을 구조했다.

해안경비대는 이날 오후 5시 58분쯤 트위터를 통해 “해안경비대와 구조 대원들이 마지막 골든레이호 선원을 무사히 구출했다”고 전했다.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약 41시간여 만이었다.

구조된 선원 4명은 건강 점검과 응급 처치 등을 위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AP통신은 “4명 모두 비교적 양호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리드 대령은 “구조된 선원들은 행복하고 안도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해안경비대의 뛰어난 구조 기술이 기적의 원동력이었다. 선원 4명은 선박의 선미 쪽 프로펠러 샤프트 룸에 갇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구출된 선원은 나머지 3명과 떨어져 있었다. 리드 대령은 3인치(7.6㎝) 구멍을 세 개 뚫어 일단 같이 있는 선원 3명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구출된 선원은 신선한 물과 음식을 제공받지는 못했으나 환풍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어 호흡이 가능했다.

특히 갇혀있던 공간은 섭씨 30도를 웃돌았고 습기까지 높았다. 구조작업이 길어졌더라면 선원들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국 사고대응반의 김영준 애틀랜타 총영사는 “해안경비대도 이렇게 빨리 (구조작업이) 진전되리라 추측 못 한 것 같다”면서 “(구조 시점을) 내일 새벽까지 얘기할 정도로 상당히 길게 봤다”고 말했다.

한편 리드 대령은 사고 원인과 관련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우리는 계속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영사는 사고 당시 일본 선박이 근접했다는 보도에 대해선 “사고 원인과 관련해 당국 조사를 기다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