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행정장관이 지난 4일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철회를 선언했지만 홍콩 시위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송환 철회 후 처음 맞은 주말에도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도 빚어졌다.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뿐아니라 행정장관 직선제, 경찰 강경 진압 조사위 설치 등 모든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시위가 중국의 올해 최대 행사인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이후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홍콩 시위대는 8일 오후 홍콩주재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홍콩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기도집회’를 열고 미국 의회가 논의하는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시위 주최측은 오후 1시 30분부터 홍콩섬 센트럴역 근처 차터가든에서도 같은 내용의 집회를 갖고 미국 총영사관까지 거리행진에 나섰다. 집회 시간이 다가오자 센트럴 역과 차터가든 일대는 몰려드는 시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시위에 참가한 홍콩폴리텍대학교 졸업생(22)은 미국 의회에 홍콩 민주주의 인권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며 “우리는 홍콩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해줄 기본적인 법을 수호하기 위해 여기에 나왔다”고 말했다.
차터가든 주변에는 집단으로 미국 성조기를 흔드는 시민들이 보였으며 ‘트럼프 대통령, 홍콩을 해방시켜주세요’ ‘우리를 짓밟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도 눈에 띄었다.
차터가든에 나온 캐빈(30)은 “홍콩 인권법안이 통과되면 미국이 홍콩 정부를 압박해 우리의 권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트럼프 정부가 법안의 원래 의도대로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SCMP에 말했다.
미 의회에서 지난 6월 발의된 홍콩 인권법안은 미국이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비자나 법 집행, 투자, 무역 등에서 홍콩에 부여하는 특별 지위 지속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또 홍콩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한 책임자에게 미국 비자 발급 금지, 자산 동결, 미국 기업·개인과 금융 거래금지 등 불이익을 주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전날인 7일에는 저녁 무렵부터 시위대를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은 시민 수백명이 몽콕 지역의 프린스 에드워드 전철역 앞에서 시위를 벌었다. 시위대는 홍콩 전철 운영사인 MTR이 프린스 에드워드 역을 폐쇄하자 근처 몽콕 경찰서 앞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물건들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경찰은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프린스 에드워드역은 홍콩 경찰이 지난 31일 최정예 특수부대인 ‘랩터스 특공대’를 지하철 객차안에까지 투입해 63명을 한꺼번에 체포했던 곳이다. 당시 경찰 특공대원들은 저항하지 않는 시민들에게도 스프레이를 뿌리고 곤봉으로 마구 때려 공권력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경찰의 구타로 머리에서 피를 흘리거나 부상당한 시민들이 속출했지만 병원 이송에 3시간이나 걸리는 등 부상자 구호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국은 부상자 이송을 위한 특별 열차 준비 등에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지만, 역사 진입을 거부당한 응급요원이 “저는 부상자들을 돕고 싶습니다. 부상자들을 구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호소하는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경찰이 부상자 치료를 거부했다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다.
또 당시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시민 3명이 숨졌다는 소문이 퍼지는 등 민심이 더욱 흉흉해지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프린스 에드워드 전철역 입구에 찾아와 조화를 놓고 경찰 폭력 피해자들을 추모를 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 정부는 지난 6월 이후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숨진 시민은 한 명도 없다고 사망설을 강력 부인했다.
당초 시위대는 이날 홍콩 국제공항을 마비시키는 시위에 나서려 했지만 경찰이 공항입구에서 검문검색을 철저히 진행하는 등 원천 봉쇄에 나서 별다른 공항 혼란은 빚어지지 않았다.
홍콩의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온 민주인권전선은 오는 15일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는 등 시민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어 시위가 더욱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