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과 미국 사이 긴밀한 군사적 유대관계 등 여러 이유들 탓에 양국간 세계2차대전 종전 평화협약을 맺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5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 중인 아베 총리가 푸틴 대통령을 만나 양국 평화조약 체결을 막고 있는 쿠릴열도 영토 분쟁 해결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푸틴 대통령의 부정적인 답변이 나왔다.
푸틴 대통령은 “장래 양국이 오랜 견해차를 극복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불행히도 애석한 일이지만 양국은 군사·안보 문제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 미국 등 제3국과 맺은 조약들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양국 평화조약이 어렵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일·러의 쿠릴열도 영토 분쟁은 역사가 깊다. 2차대전 당시 스탈린 통치하에 있던 옛 소련은 1945년 5월 독일 나치정권이 항복할 때까지 일본과 중립조약을 맺은 상태였다. 하지만 미국이 같은 해 8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던 일본을 상대로 원폭을 투하하자 동맹국이었던 소련도 이틀 후 일본에 선전포고를 내렸다. 일주일 뒤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자 소련은 일본령이었던 만주를 점령한 데 이어 북해도 북쪽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의 실효 지배에 들어갔다.
일본은 러시아를 향해 쿠릴 열도 반환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에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쿠릴열도 영토 분쟁 문제로 인해 일본과 러시아는 2차대전 종전을 선언하는 평화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상태다.
푸틴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만나기 전 쿠릴열도 4개 섬 가운데 하나인 시코탄섬 소재 수산 가공장 완공식에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도 의미심장하다. 일 NHK는 “푸틴 대통령이 시코탄섬은 러시아 영토라는 입장을 드러내며 일본을 견제했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미국의 발표에도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한·미·일 3국 동맹을 견제했다. 그는 “만일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이 일본과 한국에 배치된다면 그것들은 우리에게도 심각한 문제를 조성한다”며 “극동 지역을 포함한 러시아 영토 상당 부분이 사정권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의 발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반응을 아직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러시아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