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 체포와 백색테러 공포…주말 시위 ‘분수령’

입력 2019-08-31 12:24 수정 2019-08-31 17:06
최근 홍콩 시위와 관련해 경찰의 체포작전으로 검거된 사람들. 인터넷 캡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대에 대한 홍콩 경찰의 대규모 검거 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홍콩 시위를 이끌었던 인사들에 대한 정체불명의 백색테러도 잇따라 일어났다. 시위대에 극도의 공포감을 심어주려는 양동작전이 펼쳐지는 듯한 분위기다. 홍콩 시위를 주도해온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불상사를 우려해 31일 집회를 취소하기로 했으나 일부 단체들은 시위를 강행키로 해 충돌이 우려된다. 31일 이후 며칠간의 시위 양상은 향후 홍콩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31일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홍콩 입법회의 제레미 탐 의원과 아우 녹힌 의원이 전날 경찰에 체포됐다. 두 의원은 지난달 7∼8일 홍콩 시내 몽콕 지역에서 경찰관들의 시위대 해산을 방해하고 이 과정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라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의 체포작전은 광범위하게 이뤄져 홍콩 정부가 시위대에 대한 대응방식과 수위를 한층 높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4년 우산 혁명의 주역이었던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과 데모시스토당 당원 아그네스 차우는 30일 아침 체포됐다. 웡은 이날 오전 7시 30분쯤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다 갑자기 나타난 차량에 태워져 끌려갔다.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난 조슈아 웡.

하지만 두 사람은 경찰본부에서 조사를 받은 뒤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오후에 풀려났다. 웡은 2014년 79일 지속된 ‘우산혁명’을 이끈 핵심 인사로, 당시 17세의 나이로 홍콩의 직선제 요구 시위를 이끌었다.

홍콩 입법회 의원이자 친 독립파 정당 열혈공민의 청충타이 주석도 지난달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에 난입한 사건에 공모한 혐의로 검거됐다. 홍콩 민족당 창립자 앤디 찬과 홍콩대 전 학생회장 엘시아 순, 사틴구 의원 릭 후이 등도 29일 밤부터 잇따라 체포됐다.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 처킷 의장은 29일 오후 자신의 비서인 라우콕와이와 함께 조르단로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마스크를 쓴 괴한 2명에게 야구 방망이로 습격을 받았다. 지미 샴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그를 보호하려던 라우콕와이는 부상이 커 병원으로 후송됐다.

지난달 위안랑에서 발생한 백색테러를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했던 맥스 청은 타이포 경찰서 부근에서 쇠파이프를 든 4명의 괴한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앞서 지난 20일에는 홍콩 정관오 지역의 보행자용 터널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여성 2명과 남성 1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도 있었다.
시위대에게 권총을 꺼내 겨누고 있는 홍콩경찰.

홍콩 시위대에 대한 체포와 백색테러가 난무하자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31일 홍콩 도심에서 열기로 했던 시위를 하루 앞두고 전격 취소했다. 홍콩 경찰이 해당 집회와 도심 행진을 모두 불허한 이유도 있지만 최근 시위대에게 조성되는 공포분위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 민주당의 투진선 의원은 3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 “대대적인 체포는 젊은이들의 시위에 공감하는 시민들을 분노하게 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민간인권전선의 집회 취소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독교단체는 31일 오후 집회를 갖고 홍콩 시내를 행진하겠다고 밝히는 등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체포 열풍과 백색테러가 대학생 등 젊은 시위대를 자극하고 있어 시위가 더욱 격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기독교단체는 홍콩에서 종교집회는 신고가 필요없기 때문에 경찰이 금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경찰은 불법집회로 보고 예외없이 단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기독교단체는 캐리람 장관을 겨냥해 “홍콩의 죄인을 위해 기도하자”는 명목으로 시위를 하기로 했다.

홍콩 경찰은 월요일인 다음달 2일 홍콩 노동조합연맹 등이 계획하는 집회도 안전상 이유를 들어 불허했다. 그동안 홍콩의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온 민간인권전선이 집회를 취소한 상황에서 젊은층이 곳곳에서 통제되지 않는 집회와 시위를 강행할 경우 경찰과 더 큰 충돌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홍콩=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