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다. 우울증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감기처럼 흔하게 보이는 증상이지만,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만성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매우 주의를 해야 한다.
우울한 증상은 아동기에도 나타난다. 명백한 기분변화, 흥미상실, 무기력 등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증상도 있지만 눈치 채기 어려운 증상들도 있다. 특히 아동기에 나타나는 우울의 증상들은 화, 짜증, 따지기, 초조한 행동으로 표현된다. 머리나 배가 아프다는 등 신체적 불편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다.
J는 초등 1학년 남자 아이이다. 몇 개월 전부터 화를 잘 내고 짜증이 많아져서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고 해서 병원을 찾았다. J는 외동이다. 조부모는 물론 부모도 원하는 걸 다 들어 줄 정도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유치원, 초등학교 생활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개구지고, 여러 번 말을 해야 듣는 건 있지만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들어 들어서면서 엄마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책 모서리를 찢거나 구긴 흔적들이 발견되는 일이 잦다고 했다. 채점을 하고 틀린 걸 지적하면 “왜 낙서를 하냐” “별표도 있는데 왜 밉게 만들어놨냐” “엄마는 바보 같은 아들 낳아서 싫죠”라고 해서 엄마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자주 머리가 아프다며 할머니를 졸라 학원을 빠지기 일쑤다.
J의 말을 들어봤다. 힘든 게 뭐냐고 하자 계속 유치원만 다니고 싶다고 했다. 학교 다니면서 학원과 엄마 숙제가 많아져 놀 시간이 없다는 불만이다. 할아버지와 공원을 산책하고 공놀이도 했는데 그 시간도 줄었다. 영어학원에서 테스트를 보는 날이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학원을 가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런데 엄마와 선생님은 그것도 모르고, 꾀병이라고 하고 숙제를 더 내줬다고 억울해했다. 숙제도 힘들어서 늦게 하고 있는데 사정도 모르고 집중을 못한다고 혼내기만 해서 엄마가 많이 밉다고도 했다.
엄마도 할 말이 많다. 아이가 숙제하는 걸 너무 싫어해서 높은 반 수준이지만 한 단계 낮춰서 보냈고, 엄마 숙제도 반으로 줄였다. 하지만 수업시간 집중을 못하고 숙제하는데도 멍하게 있고, 조금만 뭐라 하면 짜증을 내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떨고 분노를 표현했다. 요즘들어 잘 먹지도 않고, 혼이 많이 난 날은 악몽을 꾸는 것 같아 엄마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이처럼 아동기 우울은 겉으로는 화가 가득 차 있고 짜증, 흥분이 많고 집중력이 저하되고, 뭐라 하면 따지고 심술을 부리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속은 우울하고, 불안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말이다.
따라서 아동기 우울증의 치료는 부모의 양육태도, 학업 스트레스, 친구문제 등 외부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환경에 대한 개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이의 현재 수준과 정서 상태에 맞게 계획을 짜서 불편함을 해소해야 한다. 아이가 원하는 활동을 늘려서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언제나 아이의 감정을 살피고,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 미묘한 변화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올바르게 대처하는 방법이 무엇일 지 늘 열린 마음으로 아이와 소통해야 한다. 누구든 내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원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