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사임하면서 사실상 연립정부가 붕괴됐다. 정국혼란은 물론 이탈리아발 유럽의 경제 위기까지 우려되고 있다.
가디언 등 유럽 언론은 콘테 총리가 이날 의회에서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일제히 전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사임을 수락하면서 서유럽 최초의 극우 포퓰리즘 정권으로 기록된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은 14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앞서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오성운동과의 결별을 선언한지 12일만이다.
콘테 총리는 사임 연설에서 살비니 부총리에 대해 “국가를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적 불안정 위기에 몰아넣은 무책임한 정치인”이라고 비난했다. 다만 새로운 연정을 구성하거나 조기 총선을 치를 때까지 ‘관리 내각’을 이끌어 달라는 마타렐라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콘테 총리는 당분간 국정을 맡을 예정이다.
동맹과 오성운동의 연정 해체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3월 총선에서 반체제 포퓰리즘을 내세워 정권을 잡은 신생정당 오성운동은 2개월간의 협상 끝에 민족주의-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3위 극우정당 동맹을 연정 파트너로 택했다. 하지만 부유한 북부를 대변해 온 동맹과 남부 지역의 서민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오성운동은 사사건건 대립했다. 북부의 자치권 확대, 감세, 사법 개혁, 주요 인프라 건설, EU와의 관계 설정 등 핵심 정책에서 워낙 입장차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8일 동맹이 추진해 온 프랑스 리옹-이탈리아 토리노 간 고속철도 사업에 대한 상원 찬반 표결에서 오성운동이 반대표를 던지자 살비니 부총리는 연정 붕괴를 선언했다.
살비니 부총리가 희망하는 것은 조기 총선이다. 현재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만큼 실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동맹은 지난 5월 유럽의회 이탈리아 선거에서 강경 난민정책을 앞세워 34.3%를 획득,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오성운동은 3위로 처졌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21일부터 각 당 대표들과 함께 새 연정 및 내각 구성 가능성 타진에 나설 예정이다. 새 연정 구성이 어려울 경우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 현재 오성운동과 의회 내 2위인 중도 좌파 민주당이 물밑에서 연정 구성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정당은 그동안 다른 이념 성향과 지지 기반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살비니 부총리의 정권 욕심에 앙금을 묻고 ‘반(反)동맹’ 전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오성운동과 민주당 역시 서로 다른 지지기반과 정책노선 때문에 연정이 성사되도 수명은 짧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외신들은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돈이 경제적 위기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당장 다음달부터 시작될 유럽연합(EU)과의 2020년 예산안 협상부터 차질을 빚게 됐다. 오는 10월 중순까지가 시한이지만 조기 총선이 실시되면 예산안 협상이 자칫 내년까지 밀릴 수 있다.
이탈리아 경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2018년 말 기준으로 이탈리아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2%를 웃돌아 EU 경제의 ‘뇌관’으로 꼽힌다. 하지만 긴축재정을 반대하고 막대한 감세 정책을 통한 경제 부흥을 주장하는 살비니 부총리가 집권하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이탈리아와 EU 사이에 격렬한 갈등이 재연될 전망이다. 만약 유로존 경제규모 3위이자 부채 2위국인 이탈리아가 재정 파탄으로 흔들리면 유럽 경제 전체가 휘청일 수 밖에 없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