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 합의안에서 백스톱(안전장치) 조항 삭제를 제안한 영국 총리에게 재협상은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국은 향후 EU 관련 회의에 대거 불참하면서 ‘EU 보이콧’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영국이 EU 회원국과의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에 따른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0일(현지시간) “백스톱에 반대하면서 현실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는 것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 사이에 다시 국경을 세우는 방안을 지지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EU 집행위원회도 27개 회원국 외교관들에게 서한을 보내 “영국 정부의 입장에 유감을 나타낸다”며 “존슨 총리의 주장은 잘못됐으며 사실을 호도한다”고 강조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전날 브렉시트 핵심 쟁점인 백스톱 조항 폐지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브렉시트에 따른 ‘하드보더(hard border)’를 피하기 위해 ‘특정 협약’을 맺을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백스톱 조항이란 브렉시트 이후 전환기간인 내년 말까지 영국을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는 조치다. 존슨 총리 등 브렉시트 강경파는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남을 경우 독자적인 무역정책을 세우기 어렵다며 백스톱 조항을 반대해 왔지만 EU 측은 백스톱 폐기 요구를 거절했다.
영국 정부는 EU 반응에 대해 백스톱 폐기가 없다면 합의는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반복했다. 총리실 측은 “협상이 재개되고 백스톱이 폐기되지 않으면 합의가 이뤄질 가망은 없다”며 “백스톱은 의회에서 세 번 부결됐고 해법으로 실행 가능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열흘 후부터는 ‘EU 보이콧’에 들어간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날 EU 주재 영국 외교관들이 다음달 1일부터 EU 관련 회의에 대거 불참한다고 보도했다. 다만, 안보·국방·금융 분야 등 중요 회의는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달부터 영국이 브렉시트 시한으로 정한 10월 31일까지 예정된 EU 관련회의는 800여회인데, 이중 3분의 1만 참석한다는 계획이다.
스티브 바클레이 브렉시트부 장관은 “각부 장관과 공무원들은 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10월 31일 EU 탈퇴 준비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는 이와 함께 지방정부가 현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900만 파운드(132억원)의 예산을 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과 EU가 브렉시트 방안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존슨 총리는 21일과 22일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를 각각 방문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은 영국에 더 끌려갈 수는 없다며 브렉시트 재협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와 관련 논의에 진척이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