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희의 인생극복기는 우리에게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overcoming story of Duck Hee Lee teaches us that we must fight).”
남자 프로테니스(ATP) 세계 랭킹 2위 라파엘 나달(33·스페인)은 전성기를 구가하던 2013년 4월, 투어 랭킹 포인트를 획득한 한국의 청각장애 중학생 선수를 트위터에 소개하며 이렇게 적었다. 한국에서조차 이름이 생소했던 그 소년은 당시 충북 제천동중 3학년생이던 이덕희(21·서울시청)였다.
선천성 청각장애 3급. 이덕희는 귀에 대고 하는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청력을 잃었다. 태어날 때부터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다. 그랬던 이덕희에게 테니스는 삶이고 낙이며 꿈이었다. 고향인 제천에서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한 테니스는 이덕희의 삶을 180도로 바꿔 놨다.
남들보다 들을 수 없는 만큼 노력했다. 심판의 콜 사인을 듣지 못해 중단된 경기를 홀로 계속하는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콜 사인은 심판의 몸짓으로 눈치를 채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열두 살이던 2010년 종별선수권, 학생선수권, 회장기를 석권하며 또래를 압도했다.
일본 쓰쿠바대 국제 퓨처스 대회 본선 1회전 승리로 첫 ATP 투어 랭킹 포인트를 획득하고 세계 랭킹 1569위에 오른 2013년 4월, 이덕희의 나이는 고작 만 14세11개월이었다. 나달은 그 도전정신에 감명을 받아 트위터에 소개했던 이덕희를 그해 9월 한국으로 찾아와 만났다. 나달은 이덕희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2014 프랑스오픈에서 이덕희를 다시 만나 훈련을 함께 했다.
서울 마포고를 졸업하고 서울시청 소속이 돼 세계 랭킹을 212위까지 끌어올린 지금, 이덕희는 월드스타의 호혜 없이 자립할 수 있는 한국 테니스의 ‘샛별’로 자랐다.
이덕희는 20일(한국시간) 테니스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세일럼에서 열린 ATP 투어 윈스턴세일럼 오픈 본선 단식 1회전에서 헨리 라크소넨(120위·스위스)을 2대 0(7-6<7-4> 6-1)으로 이겼다. 1972년 출범한 ATP 투어 사상 처음으로 본선 단식에서 승리한 청각장애 선수가 됐다.
“청각장애인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좌절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이덕희는 ATP 투어 인터뷰에서 영어 질문을 한국어로 통역하고, 그 한국어를 똑같이 말하는 약혼자의 입모양을 눈으로 읽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의 발언은 ATP 투어 홈페이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