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계 슈퍼스타 플라시도 도밍고(78)에 대한 ‘미투 고발’ 이후 공연 취소가 나왔지만 점차 도밍고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밍고가 성악가로서 은퇴하지 않고 LA오페라 예술감독 및 총감독직에서 물러나는 정도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AP통신은 지난 12일 수십년에 걸친 도밍고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8명의 오페라 가수, 1명의 무용수의 구체적 진술을 토대로 폭로했다. 도밍고가 의혹을 부인했지만 비난이 거세지면서 공연도 잇달아 취소됐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각각 9월과 10월로 예정된 도밍고의 콘서트를 취소했다. 도밍고가 예술감독 및 총감독을 맡고 있는 LA오페라는 13일 성명을 통해 “외부 변호인을 고용해 도밍고와 관련된 성희롱 의혹을 조사하겠다”면서 “우리는 모든 직원과 예술가들이 안전하게 편안하며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음 달 도밍고가 출연하는 ‘맥베스’를, 11월에 ‘나비부인’을 무대에 올릴 예정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LA 오페라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종 결정을 미루겠다고 밝혔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도밍고에게 제기된 성추행 의혹과 권한 남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LA오페라의 조사 결과가 나오려면 적어도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사실상 예정대로 공연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18일 도밍고에 대한 미투 고발로 오페라계가 양분됐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경우 도밍고의 공연들이 하나도 취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의혹에 대해 조사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관망적인 입장은 물론이고 도밍고를 지지한다는 입장까지 나오고 있어서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도 오는 31일로 예정된 오페라 ‘루이자 밀러’ 공연에 예정대로 도밍고가 출연할 것이라고 밝혔다. 헬가 라블 슈타들러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도밍고를 25년간 알아왔다. 나는 그의 예술적 위대함만이 아니라 축제 고용인들에게 대한 한결같은 그의 배려에 감동받아 왔다”면서 “만약 그가 성추행을 했다면 그동안 그런 이야기가 들려왔겠지만 나는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고 도밍고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이외에 유럽의 주요 오페라극장과 축제 감독들 역시 “도밍고는 성추행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 세계 각국의 오페라 커뮤니티와 팬사이트 역시 도밍고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나섰다.
성악가들도 입장이 갈리지만 도밍고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소수다. 오히려 수십여명이 넘는 톱클래스 성악가들이 도밍고에 대한 우정과 연대를 피력하고 나섰다. 현재 오페라계에서 최고 소프라노 가운데 한 명인 안나 네트렙코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음달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환상적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하는 무대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소냐 욘체바, 이리나 룽구, 마리아 굴레기나, 테레사 베라간자 등 여성 성악가들이 인스타그램에 ‘StandByDomingo’ ‘ISupportPlacidoDomingo’란 해쉬태그를 달고 도밍고를 지지했다.
이들은 도밍고에 대한 성추행 의혹을 잘못됐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도밍고가 지금까지 오페라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에 대해 썼다. 특히 남성 성악가들은 도밍고에게 얼마나 도움을 많이 받았는지에 대해 밝혔다. 테너 하비에르 카마레나는 “마에스트로 도밍고, 당신은 내가 얼마나 당신의 관대함과 친절에 감사하는지 모를 거다. 나는 태풍 속에 있는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가정을 위해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도하겠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해 테너 폴 애플비는 뉴욕타임스에 “오랫동안 같은 테너인 도밍고를 존경해왔으나 이번 미투 사건을 계기로 동료들이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이들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태도를 보여 괴롭다”고 밝혔다.
음악계는 LA 오페라의 진상 조사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LA 오페라는 조사를 맡긴 로펌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을 거부하는 등 도밍고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언론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의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그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도밍고는 오랫동안 여자를 쫓아다니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여러 의혹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흐지부지 끝날 것”으로 예상하면서 도밍고가 LA오페라 총감독과 예술감독을 사임하는 수순에서 마무리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브레히트가 든 이유는 5가지다. 이번에 도밍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9명이 모두 무명이라는 것, 그들이 도밍고에게 ‘No’라고 말했다지만 도밍고가 강압적으로 성추행 하지 않았다는 것, 9명 이외에 추가 고발자가 없다는 것, 도밍고가 그동안 음악계에서 수많은 헌신을 해왔으며 지지를 받는 것, 오페라계가 여전히 세계 최고의 박스오피스를 자랑하는 그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