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 화이트리스트 제외' 맞불…협상력 높이면서 외교적 소통 이어갈 듯

입력 2019-08-12 17:51 수정 2019-08-12 18:06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정부가 12일 일본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안보상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발표했다. 지난 8일 발표를 잠정 연기한 지 나흘 만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맞대응으로 일본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압박을 통해 협상력을 높이면서 외교채널을 통한 대화 노력은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보다는 경제문제에 대한 맞대응으로 맞서겠다는 게 우리 정부의 기조로 풀이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수출심사 우대 대상국에 일본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했다. 한국은 바세나르체제 등 4개 국제수출통제체제에 가입한 29개국을 ‘가 지역’으로 분류, 전략물자 수출 시 심사기간 단축 등 허가절차를 간소화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 고시안은 수출 심사 과정에서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내용이 골자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정부는 두 지역으로 나눠진 분류체계 중 ‘가 지역’을 ‘가-1’, ‘가-2’(신설) 지역으로 나눴고, 기존 ‘가 지역’이었던 일본을 ‘가-2’ 지역에 포함시켰다. ‘가-2’ 지역은 수출 심사 과정의 각종 우대 조치가 제외되고, 종전 ‘나 지역’ 수준의 수출통제를 적용받는다.

이번 조치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 것에 대한 맞대응이다. 앞서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내용을 지난 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하고, 7일 공포한 바 있다. 일본의 조치는 오는 28일 시행될 예정이다.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가 12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정부의 내정간섭 및 경제침략 행위 중단 촉구 성명서를 발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대응하면서도 외교채널을 통한 해법 모색은 이어가겠다는 방침으로 전해졌다.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협상력을 제고, 대화에 적극 임하지 않고 있는 일본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또 정부는 오는 24일 연장 시한이 임박한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꺼내들기보다 경제보복엔 경제조치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섣부르게 꺼내들기엔 미국의 반발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은 “우리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라며 “일본의 보복조치에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으니 맞대응 하는 전략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미국도 관련된 지소미아를 파기하기엔 리스크가 크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본관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서승원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크게 보면 지소미아 파기 카드는 내밀지 않고, 경제대응 조치를 확실히 할 것 같다”며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통해 우리에게 불확실성을 주고 있으니 우리도 맞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극한적인 수를 쓰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수를 쓰는 구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도 “우리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은 맞대응 조치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일본에 대해 아무런 맞대응을 하지 않으면 정부의 무조치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의 결정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고, 그 연장선에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민관공동위 발표를 통해 강제징용 피해 문제가 개인 청구권 문제까지 포함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를 대법원판결이 뒤집었다’는 일각의 주장은 “오해”라며 “대법원판결은 민관공동위 결정의 연장선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