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영상’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 사퇴로 끝?…주목받는 한국콜마 지배구조

입력 2019-08-11 16:43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고 있다. 최현규 기자

사내 직원조회에서 여성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틀어 논란을 빚은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결국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윤 회장은 “저의 과오를 무겁게 꾸짖되 임직원은 격려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한국콜마 불매운동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해도 창업자이자 최대주주로서 윤 회장이 회사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11일 서울 서초구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제 개인의 부족함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모든 책임을 지고 이 시간 이후 회사 경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이번 일로 많은 심려와 상처를 드린 저의 과오는 무겁게 꾸짖어 주시되 현업에서 땀 흘리는 임직원과 회사에는 격려를 부탁드린다”고도 했다. 불매운동이 임직원들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윤 회장은 지난 7일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극우 유튜버의 영상을 직원들에게 시청케 했다. 이 유튜버는 “아베는 문재인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대단한 지도자” “베네수엘라의 여자들은 단돈 7달러에 몸을 팔고 곧 우리나라도 그 꼴이 날 것” 등의 발언을 했다.

해당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며 논란이 일자 한국콜마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현 상황에 대응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비난을 잠재우지 못 했다. 불매운동이 오히려 고조되자 윤 회장은 사태 나흘 만에 ‘전격 사퇴’ 카드로 수습에 나선 것이다.

재계는 그러나 윤 회장의 사퇴만으로는 이번 사태를 온전히 수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윤 회장의 퇴진이 말만 그럴 듯할 뿐 실질적으로 윤 회장에게 타격을 입히는 일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갖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최현규 기자

지난 1분기 공시내역을 보면 한국콜마는 지주회사인 한국콜마홀딩스가 주력 계열사인 한국콜마 등 23개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경영권의 정점에 있는 한국콜마홀딩스는 윤 회장과 부인 김성애씨, 장남인 윤상현 한국콜마 대표이사, 차녀인 윤여원 한국콜마 전무 등 총수일가가 절반에 가까운 45.2%의 지분을 갖고 있다.

총수 일가를 제외한 지분 5% 이상 보유 주주는 일본 콜마(7.46%), 왓슨홀딩스 유한회사(6.63%), 국민연금(6.22%) 등 단순 투자목적 보유 주주들이라 딱히 경영권을 위협하거나 총수일가를 견제할 세력도 없다. 윤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더라도 한국콜마홀딩스의 지분 28.18%를 가진 최대주주로서 사실상 회사 경영에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콜마의 경우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지적돼왔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매년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공정성 등을 평가한 등급을 발표하고 있는데, 한국콜마는 지난해 평가에서 최하등급인 ‘D’ 등급을 받았다.

D등급은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제시한 지배구조체계를 거의 갖추지 못해 지배구조 리스크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되는 기업’을 뜻한다. 작년 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일반 상장회사는 전체(685개)의 4%인 26개 기업 뿐이었는데 여기에 한국콜마가 속했다.

국민연금도 한국콜마의 지배구조 문제점을 지적하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안건에 수차례 반대 의사를 표명했었다. 지난해 3월 주총에서는 윤상현 대표이사의 한국콜마 사내이사 선임에도 ‘반대’ 의사를 냈다. 윤 대표이사의 과도한 겸임과 이해관계로 인한 독립성취약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장남 윤상현 한국콜마 대표이사가 한국콜마 계열사에서 맡고 있은 직책은 총 14개다. 한국콜마 대표이사는 상근이고 나머지 13개는 비상근 이사로 재직 중이다.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실제 윤 대표는 한국콜마 사내이사 외에도 씨제이헬스케어, 콜마스크 등 13개 계열사의 사내이사를 겸하고 있다. 이중 윤 대표가 상근으로 재직하는 곳은 한국콜마가 유일하다. 한국콜마홀딩스가 올 3월 주총에서 이사선임의 주체를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로 변경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시도할 때도 국민연금은 “정당한 사유가 없다”며 반대했다.

윤 회장 사퇴 이후에도 사실상 회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등돌린 소비자들이 ‘사퇴 소식’만으로 다시 돌아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최근의 소비자 운동이 해당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사회적기여도나 평판 등도 고려해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윤 회장의 경우 지난해 12월 국세청이 공개한 ‘조세포탈 기업인’에 이름을 올린 전력도 있다. 국세청의 발표를 보면 윤 회장은 36억7900만원의 양도소득세와 종합소득세를 탈세한 혐의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한국콜마 관계자는 “전액 납부했다”고 해명했다.

윤 회장의 사퇴를 계기로 한국콜마의 경영승계 작업이 가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상현 한국콜마 대표이사는 한국콜마홀딩스의 지분 17.43%를 가진 2대 주주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윤 대표이사가 회장직을 승계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며 “다만 한국콜마의 경우 경영승계와 관련된 일감몰아주기 의혹 등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터라 승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