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의 남자’로 불리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돌아왔다. 그는 9일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을 완성하는 개각 명단에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이름을 올렸다. 조 후보자는 이날 인사청문회 사무실이 차려진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서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개혁, 법무부 혁신 등 소명을 완수하겠다”고 일성을 내놨다.
조 후보자는 “권력을 국민께 돌려드리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저의 소명으로 이 과정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이제 뙤약볕을 꺼리지 않는 8월 농부의 마음으로 다시 땀 흘릴 기회를 구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서해맹산’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시 ‘진중음(陣中吟)’에 나오는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를 줄인 말이다. 임금의 피난 소식을 접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무찌르겠다는 의지와 애국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안다’는 뜻이다. 그만큼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개각 발표 브리핑에서 “법학자로 쌓아온 학문적 역량과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능력, 민정수석으로서의 업무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검찰개혁, 법무부 탈검찰화 등 핵심 국정과제를 마무리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질서를 확립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청와대에서 법무부 장관 인사를 검토했느냐는 질문에 고 대변인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준비했다거나 거론됐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구상 … “우리 조국 교수님이 어떻습니까?”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의 오래된 구상이 현실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2003년 참여정부 첫 민정수석 때부터 검찰개혁을 강조해왔고, 노무현 정권에서 이를 완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수차례 토로해왔다. 2011년 대선주자 시절엔 김인회 인하대 교수와 함께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을 내고 “다음 민주정부의 첫 개혁과제는 단연 검찰개혁이 돼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당시 출판기념 북 콘서트에서 사회를 본 조 후보자가 검찰개혁을 위해 어떤 법무부 장관을 임명할 것이냐고 묻자 문 대통령이 “우리 조국 교수님이 어떻습니까”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특히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방송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조국) 민정수석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권력기관 개혁은 법제화 과정이 남아있다. 그런 작업까지 성공적으로 마쳐주길 바란다”고 말한 후 여권에선 ‘조국 법무부 장관’ 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대통령의 측근이자 동시에 검찰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아왔던 그의 법무부 장관 기용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권 내부에서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은 2006년 본인이 민정수석에서 물러나 있다 법무부 장관으로의 기용이 검토된 적 있었고, 무엇보다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해 조 후보자 카드를 강행하리란 관측이 우세했다.
법무부 장관 디딤돌 삼아 대권 주자 반열 오를까
조 후보자는 진보적인 법학자로, 현 정부의 첫 번째 민정수석을 지내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동안 문 대통령과 비슷한 정치적 노선을 밟아왔다. 이런 그를 ‘개혁의 아이콘’으로 띄운 뒤 차기 여권의 대선주자로 키우려 한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 총선 때 부산에서 출마할 것을 권유받을 때마다 선을 그었던 조 후보자의 행보에서 미묘한 변화도 감지된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갈등이 고조되자 조 후보자는 연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 왔다. 이날도 조 후보자는 애초 준비했던 소감문을 발표한 뒤 추가로 기자단에게 보충 소감 자료를 보내면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대한민국의 국무위원이 된다면 헌법정신 구현과 주권수호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어 “동시에 품 넓은 강물이 되고자 한다. 세상 여러 물과 만나고 내리는 비와 눈도 함께 하며 멀리 가는 강물이 되고자 한다”고 말해 사실상 향후 정치적 행보를 시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문 대통령과 현 정권 지지층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그가 검찰 개혁의 성과를 일정 정도 거둔다면, 향후 유력한 대권 주자 반열에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야당은 전쟁 선포…인사청문회부터 어떻게 넘어갈까
이렇듯 새로운 시험대 앞에 선 조 후보자가 넘어야 할 산은 절대 만만치 않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검경수사권 조정법안 등 사법개혁을 완수하려면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임명 전부터 “조국은 절대 안 된다”고 했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이번 인사가 야당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개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야당의 반대로 하반기 정국이 급랭할 경우, 비록 법무부 장관엔 올랐지만 실질적인 개혁 성과는 거두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먼저 인사청문회라는 산부터 넘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민의 인권에 대한 기본적 인식 자체가 잘못된 조 후보자 내정에 강한 유감을 표시한다”며 “청문 과정에서 도덕성, 업무 능력, 기본적인 태도 등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은 이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법무부 장관으로 옮긴 조 후보자에 대해 십자포화를 예고하고 있다. 청문회와 관련, 조 후보자는 “향후 삶을 반추하며 겸허한 자세로 청문회에 임하겠다”며 “정책 비전도 꼼꼼히 준비해 국민께 말씀 올리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나래 박상은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