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의 대신 시민 지지로…택배기사들, 드디어 여름휴가 갑니다”(영상)

입력 2019-08-09 00:10 수정 2019-08-09 00:10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김태완 위원장이 7일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다정 인턴기자

국내 택배 노동자 숫자는 5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택배기사가 4만명, 분류작업자 등이 1만명 된다. 택배기사들은 주6일 근무를 한다. 하루 13∼14시간씩 6일간 일을 하고 일요일 하루 쉬는 방식이다. 공휴일도 쉰다.

8월 15일은 광복절 휴일이고, 18일은 일요일이다. 그 사이에 낀 16, 17일 이틀을 쉴 수 있다면 장시간노동에 시달려온 택배노동자들에겐 꿈 같은 휴가가 될 수 있다. 마침 여름휴가철이다. 시민들 대부분이 가족들과 휴가를 갖는 시기다. 택배 물량도 연중 최저치 수준이다. 16∼17일을 ‘택배 없는 날’로 만들자는 운동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됐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김태완(49) 위원장은 지난 7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처음엔 여름휴가를 실제로 가겠다는 계획은 아니었다”면서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노동 실태를 알리고 지난 2일 국회에서 발의된 택배 관련 산업법인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여론을 만들어 보자는 차원에서 ‘택배 없는 날’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국택배연대는 전국택배노조와 함께 ‘택배노동자기본권쟁취투쟁본부’를 구성해 ‘택배 없는 날’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2012년부터 택배기사로 일해왔다는 김 위원장은 “휴가는 택배노동자들에겐 소원 같은 것”이라고 했다.

“휴가를 거의 못 간다. 내가 일하던 대리점에 택배기사가 10명 있었다. 7, 8월에 2명씩 교대로 여름휴가를 가면 된다. 남은 8명이 그들의 물량을 나눠서 배송하면 된다. 그런데 평상시에도 하루 평균 250개씩 물건을 배달하는데 거기에 휴가 간 사람들 물량까지 떠맡으면 너무 힘들다. 여름휴가 한 번 가려고 두 달 내내 엄청나게 힘들어야 한다. 그나마 같이 일하는 10명이 모두 휴가를 간다는데 합의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실제론 휴가를 포기하게 된다.”

택배기사들은 여름휴가만 못 가는 게 아니다. 휴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10년 넘게 택배기사를 한 사람들도 있는데 휴가를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분들이 많다. 휴가를 가려면 그날 물량을 누군가 대신 처리해줘야 한다. 동료들이 해줘야 하는데 사정이 뻔하니까 미안해서 휴가를 못 간다. 그래서 자기가 돈을 더 주고 다른 사람을 구해서 물량을 맡기고 휴가를 가기도 한다.”

택배기사는 대부분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맺고 일한다. 개인사업자라고 하지만 자기 맘대로 휴가를 갈 수는 없다. 대리점과 계약된 물량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권 차원의 휴가 보장도 없다. 그나마 지난 2017년 11월 택배노조 설립필증이 나왔고, 최근 ‘생활물류서비스법’이 발의돼 장시간노동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였다.

‘택배 없는 날’ 운동은 ‘택배기사 휴가 보내기’ 운동이기도 하다. 주6일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휴가 한 번 맘 편히 못 가는 택배기사들에게 16, 17일 이틀간 휴가를 주자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운동이다.

현재 법과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택배기사가 휴가를 가기 위해선 대리점과 택배회사가 휴가자 물량을 맡아 처리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고객들은 택배 주문을 줄이거나 지연배송을 양해해야 한다. 또 택배를 맡기는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도 협조를 해야 한다.

한 온라인 쇼핑몰 업체가 '택배 없는 날'을 지지한다는 글을 게시했다.

한 온라인 업체가 '택배 없는 날'을 지지하며 14일 오후 2시 이후의 주문에 대해서는 19일부터 배송한다는 내용의 알림글을 게시했다.

한 온라인 쇼핑몰 업체가 '택배 없는 날'을 지지하며 16일 하루 배송 출고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게시했다.

일단 시민들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김 위원장은 “언론 보도나 댓글들을 보면 시민들 대부분이 우리를 응원해 주고 계시다. 시민단체나 정당들도 지지성명을 내주고 있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이 택배기사들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하면서 ‘택배 없는 날’ 앞두고 주문을 안 받겠다는 글을 내걸고 있다”면서 “우리 택배기사들이 뭐라고 그런 지지를 보내주시는지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컸다”며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 현장에서 실제로 우리가 휴가를 가야 하는 것 아니냐, 실행 계획을 짜보자, 이런 얘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단체 휴가를 가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전국택배연대는 현재 조합원들은 물론 비조합원들을 대상으로 16∼17일 휴가신청서를 받고 있다. 휴가신청서들을 모아 회사에 전달하고 이해와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16, 17일엔 단체 휴가를 떠난다. 전국택배연대가 현재까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조합원 비조합원을 포함해 택배기사 1000명 정도가 이 기간에 휴가를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단협을 통해 처음으로 휴가권을 얻어낸 전국택배연대 소속 우체국위탁택배노조 조합원 1300명은 이미 휴가에 돌입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들이 휴가를 가더라도 ‘택배대란’은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미 한 달 전부터 휴가를 가겠다고 대리점과 택배회사에 알렸다. 또 회사에는 대체인력이 있고, 긴급을 요하는 물량은 우선순위에 따라 처리하는 과정이 다 마련돼 있다. 더구나 8월은 휴가 피크라서 택배물량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는 “택배기사들 휴가를 보내려면 보낼 수 있는데 지금까지 회사들이 휴가 시스템을 만들 생각을 안 해 왔다”며 “이번에 우리가 용기를 내서 실제로 휴가를 가야 택배대란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그리고 휴가에 대한 택배노동자들의 만족도가 얼마나 높은지도 확인될 것이다. 이런 경험이 회사들에게 휴가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하게 하는 압력이 될 수 있고, 생활물류서비스법 통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택배 없는 날’ 운동을 하면서 시민들의 힘을 절감했다고 전했다.

“이게 되겠냐 싶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우리가 주인이다, 우리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커진 것 같다. 촛불의 영향이 크다. 특히 지지와 응원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그런 생각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이어 “노조가 휴가를 따내려면 쟁의행위를 거쳐야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쟁의가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휴가를 얻어내려고 한다”면서 “우리가 쟁의권을 활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시민들의 지지와 공감의 힘만으로도 휴가를 실행하는 게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국택배연대는 이번 주부터 지역별로 집회를 열며 ‘택배 없는 날’을 만들어 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동참하고 싶은 시민들은 이들이 제안한 대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택배 주문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손쉬운 참여 방법이다.

김 위원장은 “택배산업은 점점 더 성장하고 있고, 택배서비스는 보다 개선돼야 한다”면서 “그러나 시간당 50∼60개의 물건을 배송하면서 고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택배산업의 개선이나 서비스 질 개선은 고객인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영상=김다영 인턴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