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도 못간 서울 ‘노재팬’기

입력 2019-08-06 17:52

서울 중구가 구 전역에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상징하는 ‘노 재팬’기를 걸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전면에 나서는 ‘관치 불매’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두 손을 든 것이다. 중구가 노 재팬기 설치에 나선 지 6시간 만이다.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은 6일 페이스북에 “노 재팬기를 내리도록 하겠다”며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에 국민과 함께 대응한다는 취지였는데 뜻하지 않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중구는 이날 오전 9시 동화면세점과 서울역 사이 일부 구간에 ‘노(보이콧) 재팬: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노 재팬기 50여개를 설치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오후 4시까지 도로 철거했다.

서 중구청장은 “중구청의 노 재팬기 게첨이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동일시해 일본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와 불매운동을 국민의 자발적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중구청장으로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로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애초 중구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명동·청계천 길가에 태극기와 노재팬 기를 걸 계획이었다. 6일 밤부터 15일까지 퇴계로, 을지로, 태평로, 동호로, 청계천로 등 22개 길에 태극기 노재팬 기 각 1100개씩을 설치할 방침이었다. 일본의 한국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에 대한 항의 차원이었다.

하지만 ‘일본에 역공 빌미를 줄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일본 아베 정부와 일본 시민·관광객을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어 노재팬기 게양은 불매운동이 관제 운동이라는 인상을 주고 일본 시민들을 자극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해당 비판은 중구청 홈페이지의 ‘구청장에게 바란다’와 ‘생활불편신고’ 코너,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올라가며 확산했다.

‘관제 불매운동’의 적절성 논란은 앞서서도 몇 차례 불거졌다. 일본 경제 보복에 반발하는 지자체 연합 ‘일본수출규제 공동대응 지방정부연합’이 불매운동에 동참하거나 강남구가 테헤란로 구간 만국기에서 일장기를 뺐을 때도 관이 ‘반일’ 전면에 나서는 건 위험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 노 재팬기 사태는 반발이 유독 거셌다. 자치구 관계자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은 명동에 노 재팬기가 걸면 마치 일본인 관광객을 저격하는 모양새가 된다”며 “표적을 잘 못 세운 데다 너무 강경한 메시지를 내려고 했던 게 패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