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5일(현지시간) 중국을 25년만에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했다. 중국은 향후 1년간 저평가된 달라당 위안화 환율을 바로 잡으라는 미국 측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1년 후에도 위안화 환율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미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 제한 등 경제 제재를 받게 될 수도 있다.
환율조작국은 국제무역시장에서 특정국가에 대해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조작하는 국가를 일컫는 말로, 미국은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 및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왔다. ‘종합무역법’과 ‘무역촉진법’은 미국이 지닌 두 가지 무기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두 법에 근거해 ‘주요 교역상대국에 대한 경제 및 환율 정책보고서’(환율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다. 보고서에 기반해 심층분석대상국(환율조작국)이 정해진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미국으로부터 저평가된 환율 가치를 정상화하고 무역 흑자를 정상화하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그간 미국이 환율조작국을 지정하는 주요 근거법은 지난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제정한 교역촉진법이었다. 지난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에 따른 환율조작국 지정이 자의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교역촉진법상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은 ‘연간 200억 달러(약 24조원)가 넘는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 ‘국내총생산(GDP) 2%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 ‘지속적인 일방향 외환시장 개입(GDP의 2%를 초과하는 외환을 12개월 중 6개월 이상 순매수)’ 등 세 가지다. 이중 세 요건 모두에 해당할 경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며, 두 요건을 충족하거나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과다할 경우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된다.
중국을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해 온 미국은 앞서 지난 5월 발표한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의 관찰대상국 지위를 유지했다. 중국이 당시 세 가지 요건 중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 기준’만 충족해 환율조작국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날 종합무역법에 기반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최근 양국 무역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날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는 ‘포치(破七)’가 현실화되자 이에 대한 보복을 위해 과거의 기준까지 끌어오는 다소 무리한 방식으로 환율조작국 지정에 나선 것이다. 즉 교역촉진법으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일이 여의치 않자 과거의 무기였던 종합무역법을 꺼내들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셈이다. 종합무역법은 교역촉진법과 달리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자체가 없다.
한국도 지난 1988~1989년 종합무역법에 따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바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불투명한 외환거래를 했다는 이유였다. 대만과 중국도 각각 1988~1992년, 1992년~1994년 이 법에 의해 환율조작국이 됐다. 미국 정부는 이후 25년간 종합무역법을 근거로 환율조작국을 지정한 적이 없었다.
종합무역법에 근거해 환율조작국을 지정하면 교역촉진법의 경우보다 더 광범위한 제재가 가능하다. 교역촉진법에 따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에는 ‘미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 제한’ ‘중국 기업의 미국 내 조달시장 진입 금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환율 압박’ 등의 구체적인 내용의 제재를 받는다. 반면 종합무역법은 ‘해당 국가의 경제 및 환율 정책을 압박한다’는 포괄적 내용의 규정만 있어 적용 범위가 더 넓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조치가 심각한 세계 경제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이 즉각적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터포스트(WP)는 전문가를 인용해 “이번 조치는 매우 큰 정책적 실수다. 이로 인해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