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전쟁 부른 미·중 ‘강대강’ 대치에…국내 시총 75조원 ‘증발’

입력 2019-08-06 17:03 수정 2019-08-06 18:22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초토화됐다. 미국이 1994년 이후 25년 만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세계 경제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시계 제로(0)’ 상황에 돌입했다. 미국을 비롯해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폭락했다. 금, 국채 등 안전자산의 몸값은 치솟았다.

일본 경제보복 조치에 미·중 환율 전쟁까지 겹친 한국 경제는 거센 외풍에 휩싸였다. 패닉에 빠진 개인투자자들이 투매 양상을 보이면서 한국 증시에서 이틀 만에 75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6일 코스피지수는 29.48포인트(1.51%) 떨어진 1917.50에 마감하며 5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3년5개월 만에 최저치다. 장중 한때 1891.81까지 추락하며 19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4420억원, 6066억원을 순매도했다. 기관투자자와 연기금이 매수에 나섰지만 주가 하락을 막지 못했다.

코스닥지수도 바이오기업 신라젠이 3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며 18.29포인트(3.21%) 급락한 551.50으로 장을 마쳤다. 4년7개월 만에 최저 주가지수다.

아시아 증시도 파랗게 질렸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43.94포인트(1.56%) 떨어진 2777.56에, 일본 닛케이225종합지수는 134.98포인트(0.65%) 떨어진 20,585.31에 장을 마치며 이틀 연속 하락했다.

환율도 불안한 움직임을 이어갔다. 원·달러 환율은 등락을 거듭하다 전날과 같은 1215.3원에 거래를 마쳤다. 홍콩 역외시장에서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장중 한때 7.1400위안까지 치솟았다. 2010년 홍콩 역외시장 개설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비명은 미국과 중국의 ‘강 대 강’ 대치에서 비롯됐다. 전날 중국은 ‘포치(破七) 선언’(위안화 가치를 달러당 7위안 이상으로 절하)으로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항전’ 의지를 밝혔다. 외환시장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달래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결과는 시장 기대와 정반대였다. 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중국이 자국의 통화 가치를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트린 것, 그것을 (우리는) 환율조작이라고 부른다”는 글을 올리고 불과 몇 시간 뒤 미국 재무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했다.

시장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단기간에 화해 무드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다는 부정적 전망까지 제기된다. 관건은 ‘9월’과 ‘25%’다. 미국은 다음 달에 중국산 제품 3000억 달러에 10%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만약 미국이 추가 관세 부과 방침을 철회하면 미·중 환율전쟁은 물론 무역분쟁도 봉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3000억 달러 중국산 제품에 매기는 관세율을 다른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수준(25%)으로 올리면 두 나라의 갈등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조치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모든 상품에 관세를 붙이는 것”이라며 “미국 소비자들이 관세 영향을 직접 받을 수밖에 없어 미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기존의 관세 부과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분석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