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산업통상자원부 공식 트위터 계정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결혼반지, 돌반지 팔아 단시간 내에 외채를 갚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국민 아닌가. 대한민국의 저력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보여줄 기회다”고 적힌 게시물이 올라왔다. 공식 계정의 게시물인 만큼 산업부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게시물과 함께 올라온 이미지에는 ‘일본 조치, 이겨낼 수 있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아마 일본은 불확실성을 통해서 우리 기업의 경영활동에 지장을 주는 걸 노렸을 거다’라는 해석도 담겼다.
이 게시물은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정치권과 재계, 정부 내부에서 화제를 모았다.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냐는 비판이었다. 특히 ‘금 모으기 운동’을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책처럼 표현한 게 논란에 불을 지폈다.
외환위기 때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자발적 희생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을 보탰다. 금 모으기 운동은 위기 극복의 주요 동력이기도 했다. 다만 실직, 가난, 구조조정 같은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로도 남았다. 그런데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를 국민 희생이 불가피한 문제라고 강조한 것이다. 국민의 상처를 자극해 반일 감정을 확산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산업부는 논란이 커지자 이 게시물을 삭제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6일 “이제는 정부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할 시점인데 여전히 국민 감정에만 호소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모습은 일본 정부와 닮은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일 아소 다로 부총리는 각의(국무회의)를 마친 뒤 “옴진리교를 알지 않느냐. 불화수소는 사린가스 제조에도 쓰인다. 그런 물질이 어디론가 대량으로 유출되는 일이 없다는 걸 (한국이)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이미 근거가 없다고 밝혔는데도 일본 정부는 지속해서 ‘사린가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일본에서 사린가스는 트라우마다. 1995년 6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옴진리교 가스 테러사건에 사용돼 상당한 상처를 남겼다.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민의 아픔까지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상대방에게 비이성적으로 대응한다면 같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부터 각 부처 수장이 비판 수위를 높이는 시기는 지났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사태를 살피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 제대로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