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하던 美, 한일갈등 적극 중재 나선 배경은?

입력 2019-07-31 17:15 수정 2019-07-31 17:16
사진=뉴시스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이후 한·일 갈등을 관망해오던 미국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는 모습이다. 한·일 양국에 일정 기간 분쟁을 중지하는 ‘분쟁중지협정(standstill agreement)’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진 데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할 가능성이 크고, 한국에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주장까지 나오면서 사실상 일본에 화이트리스트 조치를 연기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30일(현지시간) 미국이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강화 등 한·일 갈등과 관련, 시간을 벌기 위해 현 상태를 유지한 채 협상토록하는 협정에 서명하도록 촉구하는 중재방안을 제시했다는 미 고위 당국자의 말을 전했다. 이 당국자는 이날 미국이 한·일 양국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이 일본에는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금지’를, 한국에는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 현금과 중단’을 요청했다는 발언도 나왔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31일 미국 정부 관계자가 “트럼프정부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움직임을 우려해 아베 신조 정부에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하지 않도록 요구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또 이 관계자는 “한국에 대해선 대법원 징용배상 판결과 관련해 원고가 압류한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하는 것을 멈출 것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교도통신은 이날 ‘일·한 대립, 미국이 화이트국가 제외 연기 촉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실상 일본에 화이트국가(백색국가) 한국을 제외시키는 절차를 연기하라는 내용”이라며 “갈등이 더 격화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는 로이터통신의 보도를 전했다.

사진=뉴시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태국 방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한·일 갈등을 중재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나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만날 것”이라며 “또 두 사람을 함께 만나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도록 장려하겠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적극적 중재 행보는 한·일 양국의 갈등이 지소미아 파기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소미아는 한·미, 미·일 협력에 한·일 축까지 더해 북한 비핵화 등에 대응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공고히 하는 의미가 있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그들은 모두 북한을 비핵화하려는 노력으로 우리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두 나라를 위해 좋은 지점을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건 미국에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도 “미국은 8월 24일 지소미아 신고기한을 앞두고 특히 분쟁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중단협정 촉구’ 보도 내용을 즉각 부인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며 “한·일 관계는 현재 한국 측의 부정적 움직임이 계속되면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일본은 일관된 입장으로 계속해서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중재 의사를 밝힌 데 대해서는 “미국 측에는 우리(일본)의 일관된 입장과 다양한 문제에 대한 생각을 누차 전달해 긴밀히 제휴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올바른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 가겠다”라고 말했다. 지소미아 유지 여부 질문에는 “한·일관계가 현재 엄중한 상황이지만 연대해야 할 것은 제대로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 점을 고려해 계속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