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가 훈민정음 창제 뒷이야기를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을 비판했다.
한글문화연대는 31일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을 제대로 알자’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사실과 다른 허구를 바탕으로 삼는 일은 어쩔 수 없고, 상상력의 작동이라는 측면에서 허구가 창작의 본질일 수도 있다”면서도 “물론 역사의 줄기까지 허구로 지어내는가, 세부 사정만 허구로 그려내는가의 차이는 매우 크다. 역사의 줄기마저 허구로 지어내는 순간 그러한 창작이 심각한 역사 왜곡을 저지를 수 있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연대 측은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의 주역을 ‘신미대사’로 그리고 있는데, 이 영화는 이런 가정을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감독의 소신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일반적인 창작의 자유와는 결이 다르고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국어학계와 역사학계에서 정설로 자리 잡은 세종의 한글 창제 사실을 뒤집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 같다”며 “자칫, 세종을 남의 수고를 가로채 자기 위신 세우려는 나쁜 임금, 못난 임금으로 몰아갈 위험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연대 측은 두 가지만은 분명하게 아는 게 좋겠다면서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은 세종대왕임이 이제는 학계의 정설이다. 신미대사는 물론, 집현전 학자들도 결코 주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영화 막판 훈민정음 서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가 109자였는데 여기서 1자 줄여 108자로 만들어 훈민정음의 창제 주역인 신미대사의 공을 기린다는 대목이 나온다”며 “이 서문은 세종이 아니라 세조 때 나온 훈민정음 언해본의 서문이다. 영화에서는 당초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이 그랬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세종 때 지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세종 서문은 한자로 적은 한문 문장으로 글자 수는 54자이다”고 설명했다.
연대 측은 “우리는 영화나 방송극에서 역사를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그런 역사물을 볼 때는 더더욱 역사적 사실을 찾아보길, 대중매체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함께 다뤄주길 바라는 마음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조철현 감독의 영화 ‘나랏말싸미’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대왕의 마지막 8년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세종대왕이 아닌 승려 신미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가설을 내세워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조 감독은 29일 입장문을 내고 “영화는 세종대왕이 문자를 만드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며 “훈민정음 창제 주역으로 신미 스님을 내세우거나 세종대왕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조 감독은 논란의 중심에 선 승려 신미에 대해서는 “실존했지만 역사 속에 감춰져 있던 신미라는 인물을 발굴하여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으로 조명하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다”며 “세종대왕께서 혼자 한글을 만드셨다고 하더라도 그 내면에서 벌어졌을 갈등과 고민을 드라마화하려면 이를 외면화하고 인격화한 영화적 인물이 필요한데 마침 신미라는 실존 인물이 그런 조건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기에 채택하였던 것”이라고 밝혔다.
강문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