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실한 크리스천인 담임은 매주 수요일 6교시면 특이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가톨릭의 고해성사처럼 한 명씩 일어나 죄를 고백하는 시간이었다. 담임은 대입을 앞두고 은혜를 받으려면 영혼이 맑아야 한다고, “은혜는 깨끗한 그릇에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 시간에 소설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한상오는 이상한 고백을 했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겠습니다.”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반장 이현우는 이 말에 마음이 끌린다. 한상오와 이현우는 서로 데면데면하던, 완전히 다른 부류의 학생이었지만 둘은 잠시나마 친구가 된다. 아버지를 향한 미움이 두 사람을 교감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23년이 흘러 케이블 연결 기사가 된 상오와 수면의학 전문의로 성장한 현우는 다시 만나고, 둘은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낮잠’은 이렇듯 닮은 듯 다른 두 인물을 내세워 강렬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욕망 위선 속죄 구원 같은 묵직한 주제를 심도 있게 그려낸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이해관계를 치밀하게 엮어내는 솜씨가 상당하다.
2002년 단편 ‘나비’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04년 ‘공허의 1/4’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소설가 한수영(사진)의 네 번째 장편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징글징글하게 사랑했으므로 미련이 없다”고 썼는데, 책을 읽으면 그가 이 소설에 쏟아 부었을 열정을 느끼게 된다. 소설가 한창훈도 추천사를 통해 “소설 한 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가뜩이나 장편인 경우 (작가가) 얼마나 자주 이를 악물어야 하는지 동업자인 나는 잘 알고 있다”면서 “‘낮잠’에도 숙명처럼 그게 있다”고 평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