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죽였다” 15살 소녀, 경찰에 3번이나 신고했지만…

입력 2019-07-28 15:27
루마니아 경찰이 27일(현지시간) 15살 소녀를 납치하고 살강간한 혐의 등으로 용의자인 게오르게 딘카를 체포해 연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구할 수 있었던 15살 소녀가 경찰의 늑장대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루마니아가 분노로 들끓고 있다. 납치당한 소녀는 구타와 성폭행을 당한 뒤 경찰에 3차례나 긴급구조 요청을 했지만, 경찰은 19시간 만에야 현장에 도착했고 소녀는 없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BBC방송 등은 27일(현지시간) 루마니아 정부가 15살 소녀의 납치·실종 사건의 책임을 물어 경찰청장과 지역 행정 및 경찰 책임자 2명을 해임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알렉산드라 마케사누로 알려진 소녀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오전 유럽 긴급전화인 112로 전화를 걸었다. 소녀는 루마니아 남서부 카라칼 지역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했다가 자신을 태워준 남성에게 구타와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소녀는 마지막 통화에서 “그가 오고 있어요. 그가 오고 있어요”라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소녀는 경찰에 세 차례나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19시간이 지나서야 소녀가 납치된 것으로 예상되는 주택에 진입했다. 경찰은 이곳의 한 대형 통에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뼛조각, 옷가지와 귀금속 등을 발견했다. 시신은 없었다.

15살 소녀 납치 및 실종사건에 분노한 루마니아 시민들이 27일(현지시간) 수도의 한 거리에 소녀를 추모하는 꽃을 두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분노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시민 수백명은 26일 용의자의 집 앞에서 당국의 태만과 무능 등을 비난하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다음날에는 수천명이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도심에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루마니아 당국은 신고자의 위치를 찾는 데 애를 먹었고, 현장에 도착했을 땐 검찰의 수색영장을 기다리느라 몇 시간을 더 소비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후 다른 조치를 통해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을 시인했다. 신고자의 한 친척은 페이스북에 “조카가 검경이 범인을 보호하는 사이에 죽었을 수 있다”며 “만약 그렇다면 조카는 112로 전화하면서 믿었던 국가로부터 사실상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썼다.

사진=AP연합뉴스

클라우스 요하니스 대통령은 성명에서 “이번 비극으로 깊은 슬픔에 빠졌다. 책임 있는 당국의 오작동으로 10대 소녀를 구하지 못했다”며 이번 사건에서 각 국가기관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전면조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비오리카 단실라 총리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살인·성폭행·소아성애 등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을 위해 국민투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이번 사건 용의자인 66세 기계공 게오르게 딘카를 청소년 납치 및 강간 혐의로 27일 오전 긴급 체포했다. 딘카는 변호인을 통해 소녀를 만난 적조차 없다고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소녀가 어떻게 자신의 휴대전화로 신고전화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