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샤 허넌은 트위터에 자신을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여성이다. 허넌은 지난 3월 트위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맹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트럼프란 얼간이는 혐오로 가득 찬 발언을 일삼고, 타인에 대한 공포를 조장한다. 그의 메시지는 전 세계의 광신도들에게 퍼져나간다”고 썼다.
정치 혐오에 빠진 미국 유권자의 트위터인 것 같은 이 계정에는 반전이 있다. 허넌은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가짜뉴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계정을 ‘다중 계정’이라고 부른다. 러시아가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선거 개입을 하기 위해 사용하던 방식이다. 하지만 허넌의 계정을 만든 이는 러시아 사람이 아닌 이란 사람이었다. 이 계정은 트위터가 올해 삭제한 7000여개에 달하는 이란산(産) 계정 중 하나였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25일(현지시간) 타국의 미 대선 개입 행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어 “미국 유권자들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외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가짜뉴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연구자들은 러시아와 이란만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온라인을 통해 다른 나라의 정치와 여론에 간섭하려는 국가 리스트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중국·아랍에미리트(UAE)·베네수엘라 등 다양한 국가들이 포진해 있다.
온라인 작전을 주도하는 세력의 배후에 각국 정부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가짜뉴스는 전형적으로 자국 집권 세력의 입장을 반영하고 그들의 지정학적 이익을 대변한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산 계정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인사들에 대한 선호를 드러냈지만, 이란산 계정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2015년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이스라엘 및 예맨·시리아 내전 문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 등을 비난하면서 반(反)트럼프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온라인 허위 정보 유포’를 연구하는 미 네트워크분석업체 그래피카 소속 관계자는 “트위터가 지난 6월 삭제한 이란 계정 1666개 중 4분의 1은 영어로 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의 온라인 여론 조작 작업은 러시아만이 미국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고 강조했다.
주요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업체들은 2016년 미국 대선 이후 허위계정, 가짜뉴스와의 전쟁에 전념하기 위한 내부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도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과 함께 온라인상의 허위 정보에 대처하기 위해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들이 2020년 미 대선을 대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예방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도 나온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