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못하면 나도 신고할거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첫날인 16일.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28)씨는 출근길에 직속 팀장으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이씨를 비롯해 단체 카톡방에 있던 다른 직원들은 줄줄이 “아닙니다”고 답을 달았다. 이씨는 “위아래 할 것 없이 회사 내에서 서로 말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회사 차원의 공지도 여러번 있었던 만큼 업무 분위기가 꽤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건설회사 부장인 황모(56)씨는 이날 아침 회의 때 존댓말로 업무 지시를 했다. 황씨는 “존댓말을 쓰면 나도 모르게 하는 말실수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처음이라 어색하지만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게 서로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그동안 별 생각 없이 해왔던 일이 괴롭힘으로 인정돼 처벌 받을 수 있다는 데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특히 회사를 오래 다닌 관리자급 인사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 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돼 있다. 5인 이상 사업장에 모두 적용된다. 퇴근 후 업무 지시, 허드렛일 및 술자리 참석 강요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나와 있지 않다. 얼마나 자주 반복적으로 이뤄졌는지가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법이 시행되기까지 6개월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직원들은 “내용을 잘 모른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법 시행에 맞춰 취업규칙을 변경하고 대대적으로 사내 홍보를 벌인 대기업과는 온도차가 있었다.
실제로 대형 카드사에 다니는 김모(30)씨는 “한달 전부터 회사가 난리였다”며 “사내 공지사항의 절반 정도가 괴롭힘 금지법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반면 인천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27)씨는 “오늘부터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는지 몰랐다”며 “사내에서 이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서울 소재 중소기업의 관리자급 직원인 조모(57)씨도 “아침 회의 때 잠깐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국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니냐는 시큰둥한 분위기였다”고 소개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은 그간 직장 내에서 벌어지던 은밀하고 교묘한 따돌림, 부당한 업무 지시를 금지하고 징계토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법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병원 직원인 강모씨(31)는 “처음에야 주변 시선을 의식해 조심하겠지만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처럼 결국엔 유야무야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십계명을 발표했다. 상사의 괴롭힘과 갑질은 취업 규칙에 명시된 기구에 신고하는 것이 좋고, 익명 신고도 가능하며, 계약직 노동자는 물론 파견 노동자도 적용 대상이라는 내용이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갑질 제보 3건 중 한 건은 가해자가 대표이사”라며 “사장의 갑질 사건은 고용노동부가 근로 감독으로 전환해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산하 조직 대응 지침에서 “노조가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 적극 개입해 성과주의 인사 기준을 개선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민아 박구인 방극렬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