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통’ 김기동 부산지검장 사의 표명…“믿어준 직원들에게 감사”

입력 2019-07-16 10:26 수정 2019-07-16 10:58
김기동(55·사법연수원 21기) 부산지검장

김기동(55·사법연수원 21기) 부산지검장이 16일 사의를 표명했다.

김 지검장은 이날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게 사임 의사를 밝히고, 검찰 내부 게시판에도 사의를 표명하는 글을 올렸다.

김 지검장은 “그동안 검찰 조직에 너무 고마웠다”며 “저에게 조그마한 성과와 보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를 믿고 헌신적으로 노력해 주신 검사, 수사관, 실무관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 지검장은 윤 검찰총장 후보자(사법연수원 23기)보다 2기수 선배로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혜광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특수1부장, 방위산업비리합동수사단 단장, 부패범죄특별수사단 단장 등을 거쳤다.

김 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검찰 내 사의를 표명한 고위급 검사는 7명이 됐다. 윤 후보자가 이날 임명돼 25일 임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줄사표’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봉욱(54·19기) 대검 차장검사, 김호철(52·20기) 대구고검장, 박정식(58·20기) 서울고검장, 이금로(54·20기) 수원고검장, 송인택(56·21기) 울산지검장, 권익환(52·사법연수원 22기) 서울남부지검장 등 검사장급 이상 간부 6명이 사의를 밝혔다.

[전문]
이제 정든 검찰을 떠나려 합니다.

설레고 긴장된 모습으로 문래동에 있던 구 남부지청 청사에 첫 출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흰머리가 넘쳐나고, 서너 살이던 제 아이들이 대학까지 졸업하였으니 많은 세월이 흘렀나 봅니다.

24년 4개월 간 너무나 큰 은혜와 분에 넘치는 사랑만 받고, 검찰이나 국가에 크게 기여하지도 못한 채 떠나게 되어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자고 마음을 다잡아 왔지만, 훌륭한 분들이 넘쳐나는 검찰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하니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나 봅니다.

돌이켜 보면, 천 길 낭떠러지 옆을 걷는 긴장감으로 힘들고 고달픈 시간도 많았지만,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뿌듯함과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저에게 조그마한 성과와 보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를 믿고 헌신적으로 노력해 주신 검사, 수사관, 실무관들 덕분입니다.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사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비난 받을 부분이 있었다면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너그러운 이해와 용서를 구합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범죄를 낱낱이 밝히고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최고의 검사라고 많이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사는 개인의 삶과 국가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고, 필연적으로 수사를 받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과 아픔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유능하고 노련한 검객이라도 많은 전투를 치르다보면 자신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는 삼가고 또 삼가는(欽欽)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두려운 작업입니다.

저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나무는 목수의 먹줄을 받아들일 때 기둥이 되고, 사람은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일 때 인재가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후배 검사들이 수사를 엄정하게 하면서도 배려와 경청할 줄 아는 훌륭한 검사로 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떠난다고 생각하니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맴돕니다.

방대한 기록을 복사하느라 며칠을 쉬지도 못하고 고생하던 수사관과 실무관들,
늘 시간과의 싸움인 자금추적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수사관들,
무더운 여름 에어컨도 틀지 못한 채 고생하던 검사와 직원들
영양제를 맞아가면서 체력의 한계를 이겨내던 검사들
성탄절·연말 연시 모든 휴일을 반납하고 혼신을 다하던 검사와 수사관들
몇 달 간 지방 여관에서 잠을 자면서 검거를 위해 고생하신 마약수사관들
과로로 각막이 떨어져 수술을 받고 몇 년간 고통을 겪었던 수사관

평생 갚아도 모자라는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같은 근무하던 분들과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의 겨울 소백산 정상, 폭설로 뒤덮인 덕유산,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주왕산을 비롯하여 전국의 수많은 산을 올랐던 기억,
수십 명의 직원들과 함께 수도권 일대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했던 기억
부산의 아름다운 갈맷길 트래킹, 즐거운 체육대회
폭염의 날 검찰청에서 직접 팥빙수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나눠 주었던 기억
직접 다녀 보았던 맛집을 정리·배포하여 큰 호응을 받았던 기억
힘든 수사를 끝내고 수사팀 전원이 모여 회포를 풀던 순간
매일 늦은 밤까지 일하면서도 짬을 내어 술잔을 기울이던 짜릿했던 순간들

모두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검찰은 인재들이 넘쳐나는 유능한 조직입니다.

어려움이 많겠지만, 곧 취임하시게 될 총장님을 중심으로 뜻과 역량을 모아 나간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검찰이 크게 변화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 밖에서라도 박수를 보내고 응원하겠습니다.

그 동안 베풀어 주신 큰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혹여 저의 과욕과 부족함 때문에 마음 상하였을 분들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검찰 가족 여러분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9. 7. 16.
부산지검장 검사 김 기 동 올림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