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실시되는 차기 대만 총총 선거에서 한궈위(62) 가오슝시 시장이 중국국민당(국민당) 후보로 나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소속인 차이잉원 현 총통과 맞붙게 됐다.
대선 후보 결정을 위한 국민당 여론 조사 결과 한 시장이 궈타이밍 전 훙하이정밀공업그룹 회장 등 경쟁자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고 연합보 등 현지 언론이 15일 보도했다. 한 시장은 17일 당 중앙상무위원회 보고와 28일 국민당 전국대표대회 등 절차가 남아있지만 여론조사 결과로 국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궈타이밍 전 회장은 대선에 집중하기 위해 훙하이그룹 회장직까지 사퇴하고, 대만 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내걸어 한때 국민당 총통 후보 지지율에서 1위에 올랐으나 결국 한류(韓流·한궈위 열풍)를 넘어서지 못했다.
민진당도 앞서 여론조사 방식으로 차이 총통을 차기 대선 후보로 최종 확정했다. 대만 대선은 2020년 1월 11일 치러진다. 내년 대만 선거에서는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파생된 중국 본토와의 양안 갈등, 홍콩 시위에서 촉발된 일국양제 통일방식에 대한 거부감 등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한 시장은 지난해 11월 24일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22개 현·시장 자리 중 3분의 2에 달하는 15곳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대권 주자로 급부상했다. 당치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은 6개 현·시장 자리를 얻는 데 그쳤다.
정치 경력이 일천했던 한 시장은 1998년 이래 민진당의 20년 텃밭이었던 대만 남부 가오슝 시장 후보로 출마해 민진당의 경제 실정을 명쾌한 화법으로 공격하며 ‘한류 열풍’을 일으켰다.
그는 “민진당은 가오슝의 젊은이들을 떠나게 했다”, “낡고 가난한 가오슝을 대만 최고의 부자 도시로 만들겠다”, “가오슝 인구를 10년안에 500만 명까지 늘리겠다”는 공약으로 표심을 공략했다. 가오슝 시민들은 민진당이 20년간 집권했지만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며 한 시장을 적극 지지했다.
그는 대만 남부지역 폭우 때 홀로 우산을 쓴 채 양복바지를 걷어 올리고 침수 현장을 돌아다니며 ‘서민 정치인’ 이미지도 각인시켰다. 대머리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운 한 시장은 대머리 지지자들을 유세장에 불러모아 ‘가오슝 빛내기’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 그의 돌풍은 다른 국민당 후보들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며 2016년 정권교체후 고전하던 국민당을 살리고, 한 시장 자신도 새로운 맹주로 자리매김했다.
한 시장은 지난 3월 가우슝시 대표단을 이끌고 광둥성 선전을 방문해 류제이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과 만나 92공식(九二共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친중 성향을 과시하기도 했다. 92공식은 중국 본토와 대만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를 말한다. 류 주임은 “양안 동포가 함께 단결해 92공식을 견지하고 대만독립 분열세력에 단호히 반대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미래를 만들어나가자”고 화답했다.
한 시장은 올들어 여론조사에서 한때 40%를 넘으며 선두를 달렸으나 최근 대만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이 급격히 오르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차이 총통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 직후 당 주석 자리까지 내놓는 등 재선이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많았었다. 하지만 올 들어 ‘민주주의 수호’를 기치로 내건 차이잉원 총통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는 데 성공해 당내 경선을 뚫고 재선 도전에 나서게 됐다.
올들어 대만 여론조사에서 차이총통의 지지율은 20%대에서 맴돌았으나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고, 최근에는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처음으로 1위를 탈환했다는 여론조사결과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