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신원 확인 절차를 무시한 채 도주했던 ‘수상한 사람’은 경계근무 중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빼먹으려고 근무지를 이탈했던 이 부대 소속 상병인 것으로 조사됐다. “내가 바로 그 수상한 사람”이라고 허위자백을 한 병장은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려는 이 부대 간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15일 “대공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며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허위자백이 이뤄진 과정도 설명했다. 지휘통제실에 근무하던 A소령은 사건 발생 다음 날인 지난 5일 오전 6시쯤 생활관을 찾아가 병사 10명을 휴게실로 불러 모은 뒤 “조기에 상황을 종결하지 못하면 부대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때 A소령과 B병장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A소령은 B병장을 지목하며 “○○가 한 번 해볼래?”라고 허위자백을 유도했고, B병장은 “알겠다”고 응했다는 것이다. B병장은 2함대 헌병대대 조사에서 “흡연을 하던 중 탄약고 경계병이 수하를 하자 이에 놀라 생활관 뒤편쪽으로 뛰어갔다”고 허위자백을 했다. 헌병은 CCTV 분석 등을 토대로 허위자백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A소령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입건했다.
그런데 A소령은 중령 진급 예정자다. 허위자백을 제외하고는 이번 사건에서 큰 실수가 드러나지 않은 간부가 중징계를 받을 만한 허위자백을 주도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이른바 말년병장이 허위자백 제의를 덥석 받아들인 것도 미스터리다. ‘사건을 빨리 덮으라’는 A소령 윗선의 압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군 안팎에서 흘러 나오는 이유다.
국방부 관계자는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24시간 근무하는 관계였다. 굉장히 오랜 시간 잘 알고 있는 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B병장에 대한 (허위자백) 대가는 없었다”며 “A소령은 ‘처벌이 있다면 선처가 되도록 책임을 지고 하겠다’고 B병장에게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4일 탄약고 인근 초소 경계병의 신원 확인에 응하지 않고 도주했던 사람은 이 부대 소속 C상병으로 밝혀졌다. 다른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C상병은 음료수를 사려고 200m쯤 떨어진 생활관 자판기로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수하에 응하지 않고 도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C상병은 당시 카드 잔액이 부족해 음료수를 사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C상병은 “두려운 마음에 근무지 이탈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번 허위자백 사건은 발생 직후 국방부에 보고되지 않았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조속한 시일 내에 재발방지 대책을 포함한 군 기강 확립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260조(보고사고)의 지휘보고 및 참모보고 대상 사고에 포함되지 않아 해군에서는 국방부 등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북한 목선 ‘입항귀순’과 관련한 경계실패, 해군 2함대 허위자백 사건을 비롯한 군 기강 해이 등을 문제 삼아 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공동으로 제출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