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5일 일본의 통상 보복 조치 대응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실효적 조치가 나오기 전까지 영수회담은 없다던 입장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여당이 제안한 5당 대표 회담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가 한·일 간 감정싸움 양상으로 흐르면서, 정부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에 회담을 제안하고자 한다”며 “위기 상황에 정치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국민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어떤 회담이라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4일 전 “대통령이 5당 대표들을 만나봐야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오겠느냐. 국내 정치용 이벤트에 야당을 들러리 세울 때가 아니다”라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대통령과 5당 대표 회담을 거절한 것에서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황 대표는 그동안 5당 대표 회담보다 일대일 단독 회담이 먼저라며, 정부·여당의 영수회담 제안을 거절해왔다.
황 대표가 전격적으로 청와대에 회담을 제안한 데에는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친일 정당 프레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호감도가 28년 만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 문 대통령이 이순신 장군을 언급하는 등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맞서는 모양새가 지속될 경우, ‘야당이 아베 편만 들고 있다’는 여권의 프레임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 보복 사태의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는 여론보다 일본 정부에 있다고 보는 여론이 우세한 상황도 한국당에는 불리한 환경이다.
지지율 하락, 계파 갈등 등 황 대표를 둘러싼 리더십 위기론도 이번 결정과 무관치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초보 정치인’으로서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가운데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포석이란 것이다. 다만 황 대표는 “어떤 정치적인 계산이나 목적을 갖고 이번 대통령 회담을 제안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 난국을 타개하기를 바라는 마음밖에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