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안)을 둘러싼 시위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중국 중앙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주말 홍콩에서는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송환법 반대 시위를 벌여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람 장관은 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화된 최근 몇 주 동안 중국 정부에 수차례 사임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당신이 벌여놓은 일이니 당신이 수습하라”며 “당신 말고는 이 사태를 수습할 사람이 없으며 당신 자리를 원하는 사람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때문에 람 장관으로서는 진퇴양난에 놓인 처지가 됐다. FT에 따르면 송환법안 제정 추진은 중국 정부와 무관하게 람 장관이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송환법이 홍콩 내 반체제 인사의 중국 송환을 정당화할 것이라는 비판이 일면서 람 장관은 ‘중국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로서도 송환법 사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람 장관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람 장관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송환법안은 죽었다”며 사실상 철회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송환법안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때문에 시민들은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된 뒤 법안이 재추진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홍콩 행정장관실은 람 장관이 사임 의사를 밝혔는지 여부와 관련해 “람 장관은 홍콩 시민을 위한 복무에 계속 헌신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는 입장만 밝혔다. 중국 국무원 산하 홍콩 연락판공실 왕즈민 주임은 지난 11일 “(중국 정부는) 람 장관을 굳건히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홍콩 시위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홍콩 시민 11만5000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2만8000명)은 14일 오후 홍콩 사틴 지역의 사틴운동장에 모여 사틴버스터미널까지 행진했다. 일부 시민들은 ‘악법 철폐’ 등 문구를 새긴 대형 플래카드를 들었다. 미국 성조기와 영국 국기, 영국 통치 시기에 쓰이던 홍콩기도 눈에 띄었다. 이날도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빚어지면서 시위대 22명, 경찰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 시위에 참여한 37명이 불법집회 혐의로 체포됐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