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4월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무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가수반인 사실을 헌법을 통해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외 선전 매체 ‘내나라’가 11일 공개한 북한 사회주의 헌법 100조를 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이다”라고 명시돼 있다. 개정 전 헌법과 비교하면 ‘국가를 대표하는’이라는 문구가 추가된 셈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를 열고 헌법을 개정했지만 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날 개정된 내용을 공개하면서 김 위원장이 법적으로, 대외적으로 북한의 명실상부한 국가수반이라는 점을 공식화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한 것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라며 “하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것은 김 위원장이라는 점을 못 박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그동안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것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8년 9월 공식 집권하면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대외적 국가수반 지위를 부여했는데, 대외활동을 꺼린 그의 성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자신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에 나눠준 기능을 다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김 위원장이 자신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대내는 물론 대외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김 위원장이 향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종전선언·평화협정 등에 나서며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모호성을 헌법 개정을 통해 없앴다는 것이다. 헌법 개정이 없다면 종전선언 선언식에 북한 대표로 나오는 것은 국무위원장이 아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어야 한다.
한편 북한은 이번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소환장을 접수한다”고 명시했다.
북한은 또 헌법을 개정하면서 달라진 경제적 변화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내세운 경제개혁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국가경제 관리 방법으로 명시했고 실리를 보장하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한다는 표현도 더했다.
개정된 북한 사회주의 헌법 33조을 보면 “국가는 경제관리에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실시하며 원가, 가격, 수익성 같은 경제적 공간을 옳게 이용하도록 한다”고 적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효율성 제고를 위해 생산, 판매, 투자 등 경영활동에 대한 기업의 자율성과 재량권을 확대한 정책이다. 북한이 이번 개정을 통해 헌법에 그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북한은 또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한 ‘민족의 태양’ 등의 표현을 삭제했다. 북한이 최근 역대 최고지도자의 우상화 선전에서 '신격화'를 배제하는 움직임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